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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선언' 2년 만에…60년 공들인 '원전 생태계' 무너진다

입력: 2019- 06- 19- 오전 02:47
© Reuters.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3일 서울대 KAIST 등 전국 18개 대학 원자력학과장들과 간담회를 하려다 급히 미뤄야 했다. “탈(脫)원전에 들러리로 설 수 없다”며 불참을 통보한 학교가 많았기 때문이다. A대학 교수는 “정부가 원전 해체와 방사선 연구 등 본질에서 벗어난 지원책으로 원자력계를 회유하려는 것 같다”며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지 19일로 2주년이다. 그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자랑하던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가 서서히 붕괴하면서 인력·기술 유출이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등 원자력 관련 공기업 세 곳에서 자발적으로 퇴직한 사람은 144명에 달했다. 2016년(93명)과 비교하면 2년 만에 50명 넘게 늘었다. 상당수는 아랍에미리트(UAE) 등 해외 원자력업체에 재취업했다. 이 과정에서 기술 유출 의심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원전 공기업 퇴직자들이 한국형 경수로(APR-1400) 설계 기술을 빼돌린 혐의 등을 잡고 수사 중이다.

값싼 원자력을 바탕으로 매년 수천억~수조원의 이익을 내던 공기업들은 일제히 적자로 돌아섰다. 2016년 7조1483억원의 순이익을 냈던 한국전력이 대표적이다. 작년 손실액만 1조1745억원으로, 2년 동안 8조3228억원을 허공에 날렸다. 작년에 에너지 공기업 11곳 중 적자를 낸 곳이 8곳에 달했다. 올해도 이런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한전은 내부 보고서에서 올해 1조9000억원, 한수원은 49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예상했다. 원전 이용률 하락이 주요 배경이다.

탈원전에 반대하는 여론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한국원자력학회가 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달 15일부터 사흘간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결과 원전 유지·확대 의견이 72.8%에 달했다. 작년 8월부터 3개월 단위로 조사한 1~3차(67.7~69.3%)보다 원전 찬성 여론이 확대됐다.

부품업체 문 닫고, 핵심인력·기술 빠져나가…원전 안전 더 위협하는 脫원전

정부의 위탁교육기관인 A사는 작년 가을 한국서부발전에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서부발전은 비상경영을 이유로 거절했다. A사 대표는 “서부발전이 종전처럼 수천억원의 흑자를 냈다면 몇천만원에 불과한 안전교육 비용을 아끼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해 안타까웠다”고 했다.

‘탈원전 실험’에 따른 부작용이 쏟아지고 있다. 전력·발전 공기업은 물론 원자력 부품업체들도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정부가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꼽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은 오히려 환경훼손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탈원전을 공식화한 지 2년 만이다.

탈원전 정책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곳은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동서발전 등 에너지 공기업이다. 11개 에너지 공기업 중 작년에 적자를 기록한 곳이 8곳에 달했다. 값싼 기저발전원인 원전의 이용률이 뚝 떨어진 게 가장 큰 배경이다. 원전 이용률은 2016년만 해도 평균 79.7%에 달했으나 2017년 71.2%, 작년 65.9%로 하락했다.

탈원전 정책이 3년째로 접어든 올해는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한수원은 올해 491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낼 것으로 자체 추산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 역시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전은 내부 보고서에서 “올해 별도재무제표 기준 1조9000억원의 손실을 볼 것”이라고 했다. 한전은 올 1분기에만 7612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서부발전 관계자도 “당분간 적자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자력의 ‘미래’인 전공자들도 학계를 잇따라 떠나고 있다. 한국원자력학회가 최근 전국 18개 대학을 실태조사한 결과 전과, 자퇴 등으로 학업을 중도 포기한 학생이 2016년 62명에서 작년 77명으로 늘었다. 원전 전공의 중도 포기자 비율이 9.4%에 달했다. 원자력학회 관계자는 “탈원전 선언 후 원전 자체가 기피 분야가 됐다”며 “지금 상태가 지속되면 원전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지고 원전 안전에도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전문 인력도 마찬가지다. 한수원 한전기술 한전KPS 등 원전 관련 공기업 3사의 자발적 퇴직자가 작년 144명에 달했다. 30년 넘게 한수원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은 “회사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원전을 대체할 발전원으로 꼽았던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은 오히려 곳곳에서 주민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서울에너지공사가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짓기로 했던 태양광발전소 사업이 주민 반대로 무기한 연기된 게 대표적 사례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작년 봄 전국 저수지 899곳에 총 2948㎿ 규모의 수상태양광 발전소를 짓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재 착공된 건 하나도 없다. 사업이 줄줄이 좌초하자 농어촌공사는 올초 ‘신재생에너지 사업본부’를 없애고 담당인력도 감축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공언한 재생에너지 계획은 애초에 현실성이 부족했는데 잇따른 사업 차질로 목표 달성이 더 힘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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