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축산관련단체협의회 관계자들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수입 축산물 무관세 개정 철회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수입산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축산물에 대한 무관세 카드를 꺼내들면서 국내 축산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도입 추진 중인 원유(우유의 원료) 차등가격제를 두고 낙농단체들도 반대 시위에 나서기로 하면서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소고기 등 할당관세에 농가 반발
12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전국한우협회 회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국민의 고물가 부담완화를 위해 수입 소고기 10만t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이 불가피함을 양해해달라”며 “(대신)사료 자금 지원, 추석 성수기 한우 암소 대상 도축 수수료 지원 등을 통해 한우 농가에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당초 이 간담회는 정 장관 취임 후 상견례를 겸해 업계의 건의 사항을 듣기 위한 자리로 마련됐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8일 소고기, 닭고기 등 수입 축산물에 0%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고물가 부담 경감을 위한 민생안정 방안’을 발표한 뒤 축산관련단체들의 불만이 커지자 장관이 나서 설득에 나선 것이다.
한우협회는 민생안정 방안 발표 당일 성명을 내고 “사료값 폭등에 시름하는 농가를 사지로 몰아넣는 무관세 정책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민생안정 대책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농심을 합쳐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간담회가 열린 11일 오전에는 한우협회, 한돈협회, 양계협회 등 20여개 단체로 구성된 축산관련단체 협의회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소고기 무관세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축산단체들의 반발에도 농식품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같은 날 대통령실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추경호 부총리는 “민생과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전방위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발표한 물가 및 민생 안정 대책의 이행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지원 사각지대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봐 달라”고 주문했다. 물가 잡기가 정권의 0순위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농식품부도 보조를 맞출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 기준 전월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분(6.05%)가운데 농축수산물 기여분은 0.42%포인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석유류 등 다른 물가 상승 요인의 경우 정부 정책으로 물가 상승세를 제어하기 어렵고, 농축수산물 물가가 가공식품·외식 등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할당관세 등 물가대책의 필요성이 높다는 것이 정부 측의 설명이다.
◆평행선 달리는 차등가격제…'우유대란' 우려도
축산업계 뿐 아니라 낙농업계와의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 10일 지방자치단체들과 긴급 대책회의 열고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현재 용도와 관계 없이 단일 가격으로 쿼터제(수량할당), 생산비연동제(생산비따라 가격결정)가 적용되는 원유 가격 체제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눠 차등화하는 제도다. 정부는 1인당 음용유 소비는 감소(2001년 36.5kg→2021년 32kg)했지만 치즈·버터·아이스크림 등 수입산 원료를 사용하는 유가공품을 포함한 유제품 소비는 증가(같은 기간 63.9kg→86.1kg)해온 상황에서 수요에 대한 고려 없이 국내 농가의 생산비에 따라 음용유 단일 기준으로만 원유 가격을 결정해온 기존 제도가 국내 낙농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1일 한우협회 회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수입 소고기 할당관세 적용 등 정부의 물가 대책에 대한 이해를 요청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미국(4개), 캐나다(6개)등 다른 나라들은 원유 용도에 따라 원유 가격을 다르게 적용하지만, 한국은 가격이 높은 음용유 단일 기준으로만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유업계로선 유가공품에 사용하는 원료를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 유제품 국내 생산은 2001년 234만t에서 2021년 203만t으로 감소했다. 반면 수입은 같은 기간 65만t에서 251만t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총 210만t의 쿼터를 두고 음용유 190만t, 가공유 20만t의 차등가격제 도입을 낙농업계에 제시한 상태다. 차등가격제를 통해 국내 가공유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 유업계의 유가공품용 수입산 원료가 국산으로 대체되며 줄어들던 국내 생산량도 늘고 중장기적으론 농가 소득과 원유 자급률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농단체들은 제도 개편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11일 성명을 통해 “생산비 이하 수준인 가공용을 더 생산해서 소득을 유지하라는 논리를 현장을 모르는 관료들의 자가당착”이라며 “낙농가들이 바라보는 정부안의 문제점에 대해 토론하고 서로 쟁접을 좁혀가며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라고 밝혔다.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8월을 기점으로 이뤄지는 원유 가격 조정을 앞두고 낙농가가 원유 납품을 거부하는 ‘우유대란’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및 생산비 연동제 폐지 등을 두고 낙농업계 등 생산자 측과 유업계 등 수요자, 그리고 정부 간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며 원유 가격 조정을 논의하는 원유기본가격조정협상위원회가 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서다.
낙농협회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5개월째 차등가격제 폐지를 촉구하는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 시도에서 순차적으로 궐기대회 등 반대 시위도 이어갈 계획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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