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기 겁나요” 3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이날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5.4% 뛰었다. 5%대 물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후 처음이다. 허문찬 기자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5.4%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8월(5.6%) 후 약 14년 만의 최고치다. 코로나19 이후 시중에 많은 돈이 풀린 데다 공급 측면에서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 폭풍’이 덮친 것이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7.56(2020년=100)으로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5.4% 상승했다. 4월(4.8%)보다 상승폭이 0.6%포인트 커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대부분 1~2%대였지만 작년 10월 3%대로 올라섰고 올 3, 4월 4%대로 치솟은 뒤 5월엔 5%대로 올라섰다. 5%대 물가는 2008년 후 처음이다.
지난달 생활물가지수(소비자의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으로 구성한 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6.7% 상승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석유류 제외)도 4.1% 올랐다.
지난달 물가 상승분의 82%는 석유류를 포함한 공업제품과 외식 등 개인서비스 가격 상승에서 비롯됐다. 공업제품과 개인서비스 물가는 각각 8.3%와 5.1% 올랐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 5.4% 중 공업제품의 물가 기여도가 2.86%포인트로 절반을 넘었다. 경유(45.8%) 휘발유(27.0%) 등유(60.8%)와 자동차용 액화석유가스(LPG·26.0%)가 모두 오르며 석유류가 34.8% 뛰었다. 개인서비스의 물가 기여도는 1.57%포인트였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물가가 당분간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는 이날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6월과 7월에도 5%대 높은 소비자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급 측면에서 국제 유가와 식량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코로나19 방역조치 완화로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요인도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돼지고기 20%·경유 45% ↑…금리 올리고 유류세 낮춰도 '고공행진'
5월 물가상승률 5.4%…2008년 이후 최고3일 전국의 휘발유와 경유 평균가격은 각각 L당 2020원, 2013원이었다. 올 1월 1일(휘발유 1622원, 경유 1441원)과 비교하면 L당 400원, 600원가량 뛰었다. 교촌치킨, bhc, BBQ 등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업체들은 지난해 말부터 메뉴에 따라 가격을 500~2000원 올렸다. 이에 따라 치킨 한 마리 가격이 2만원을 넘기도 한다.
○돼지고기·배추·치킨·경유 다 올랐다소비자물가가 뛰고 있다. 올 3월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가 4.1% 상승했을 때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우리 경제의 복합 위기 징후가 뚜렷하고 특히 물가가 심상찮다”고 우려했다. 그로부터 두 달 만에 물가는 5%대로 뛰어올랐다.
물가는 농산물(-0.6%)을 제외한 전 분야에서 상승했다. 돼지고기(20.7%)와 수입 소고기(27.9%), 배추(24.0%), 감자(32.1%), 밀가루(26.0%), 식용유(22.7%) 등 ‘밥상 물가’는 물론 경유(45.8%), 휘발유(27.0%), 전기료(11.0%), 도시가스(11.0%) 등 각종 생활물가가 모조리 올랐다. 생선회(10.7%), 치킨(10.9%), 갈비탕(12.2%) 등 외식 물가도 크게 뛰었다. 파(-48.0%), 사과(-22.7%), 쌀(-11.2%), TV(-6.2%) 등 일부 품목의 가격은 1년 전보다 떨어졌지만 다른 품목이 대부분 오르면서 전체 소비자물가 급등을 막진 못했다.
기획재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장기화하고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를 부분 금수 조치하면서 석유류 가격이 크게 뛰었다”며 “농·축·수산물은 생산비용 증가와 수입품 가격 상승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 재료비와 운영경비, 물류비 상승 등 때문에 서비스 및 공업제품 가격도 올랐다고 분석했다. ○유류세 인하·금리 인상도 안 먹혀당분간 물가 급등세를 막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4, 5월 15년 만에 처음으로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기재부가 지난달부터 유류세 인하폭을 20%에서 30%로 확대했지만 물가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 정부가 발표한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도 당장의 물가 급등세를 잠재우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물가 급등을 촉발한 대표적 요인으로 꼽히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이른 시일 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 데다 글로벌 공급망이 회복되는 데도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소비 수요는 더 커질 전망이다.
한은과 기재부는 당분간 5%대 물가 상승률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민간전문가는 6%대 물가상승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6월이나 7월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 내외로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를 기록한 건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11월(6.8%) 이후 한 번도 없었다. 김웅 한은 조사국장은 “6%대 가능성은 가장 불투명한 국제 유가의 추가 상승 흐름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경기 하강 우려 속에서 물가가 급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마저 커지자 정부는 추가 대책도 검토하고 있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이날 경제관계차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민생안정책의 효과가 즉각 나타날 수 있도록 예산 집행과 관련 법령 개정 등 후속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여름철 가격 변동성이 큰 농축산물 관리에 집중할 계획이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충남 아산에 있는 양수장을 찾아 “국제 곡물가격 상승 등으로 물가 부담이 큰 상황에서 최근 가뭄이 농산물 물가 상승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사전에 수급 계획을 마련해 철저히 관리해 나가겠다”고 했다.
도병욱/조미현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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