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70·사진)이 ‘운명의 한 주’를 맞았다. 이번주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지주회사인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놓고 잇달아 국민연금과 표 대결을 벌인다. 조 회장 측이 유리하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결과를 장담하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칼자루 쥔 국민연금
대한항공은 27일 서울 공항동 본사에서 주총을 열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임기 3년)을 상정한다. 대한항공 지분은 조 회장과 한진칼(지분 29.96%) 등 특수관계인이 33.35%를 갖고 있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 지분율은 11.56%다. 대한항공 정관은 이사 선임과 해임을 특별결의사항으로 분류해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출석 주주 과반수 찬성표만 확보하면 처리되는 일반적인 상장사 이사 선임 요건보다 까다롭다.
상장사 주총 참석률이 통상 70∼80%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지분 중 23.31~26.64%가 반대하면 조 회장 재선임이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민연금(11.56%)이 반대하고, 추가로 11.54~15.00%가 동조하면 조 회장 연임이 무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DFA(1.52%) 뱅가드(1.32%) 블랙록(1.29%) 골드만삭스(0.66%)를 비롯해 대한항공 지분 24.77%를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의 표심 향방에 승부가 갈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안에 대해 명확한 찬반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해당 안건에 대해 반대를 권고한 만큼 재선임 반대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국민연금이 25일 열린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기권했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국민연금이 기권함으로써 사실상 현 회장 측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현 회장은 과거 경영한 현대상선으로부터 배임 혐의로 고발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조 회장 혐의는 사법부에서 유·무죄 여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국민연금은 죄형 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의결권 행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진칼은 조 회장 측이 유리
오는 29일 서울 소공동 한진빌딩에서 열리는 한진칼 주총에선 국민연금이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이사는 결원으로 본다’는 정관변경 안을 주주제안으로 올렸다. 조 회장 측근인 석태수 대한항공 부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을 놓고도 맞붙는다. 조 회장 측이 지분 면에서 유리하다는 관측이 많다.
국민연금이 제안한 정관변경 안건은 특별결의 사항이다. ‘출석 주주 3분의 1’ 이상이 반대하면 부결된다.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조 회장 측이 반대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정관변경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조 회장 등 특수관계인은 한진칼 지분 28.93%를 갖고 있다.
석 부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은 보통결의 사항이어서 출석주주 과반수 의결권만 얻으면 된다. 2대 주주(10.71%)인 행동주의 펀드 케이씨지아이(KCGI)가 반대하기로 했지만 조 회장과 우호 주주들이 힘을 합치면 통과가 무난할 전망이다. KCGS와 서스틴베스트 등 의결권 자문사들이 석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찬성을 권고하면서 분위기가 조 회장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CGI가 한진칼에 낸 주주제안에 대해서는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21일 “KCGI가 주주제안을 할 자격이 없다”는 판결을 내리며 주총 안건 상정 자체가 무산됐다.
김보형/김익환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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