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통째로 뽑아오고 경비행기, 슈퍼카를 설치하고….
지난 14~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스위스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선 최고급 명품시계 브랜드가 한데 모여 신제품을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기술력과 예술성, 상품성을 두루 갖춘 신제품 시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공개하기 위해 브랜드마다 치열한 ‘부스 경쟁’을 벌였다. 에르메스
각 브랜드 부스를 얼마나 시계 콘셉트에 맞게 구성하는지, 예쁘고 특이하게 꾸미는지에 따라 관람객들의 반응이 달라지기 때문에 브랜드들이 부스를 꾸미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박람회 수개월 전부터 부스 설치를 시작할 정도다.
화려하고 웅장해진 ‘부스 경쟁’
올해는 역대 최대인 35개 브랜드가 전시회에 참가했다. 그 어느 때보다 부스 경쟁도 치열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예거르쿨트르. 이 브랜드는 공방이 있는 스위스 발레 드 주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과 나무 냄새, 평온함을 표현하기 위해 발레 드 주 지역의 나무를 통째로 뽑아왔다. 부스 안에 실제 나무를 심은 것이다.
나무를 잘 아는 전문가가 다른 나무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350㎏짜리 나무 열 그루를 뽑았다. 콘셉트를 잡는 데만 2개월, 흙으로 부스 바닥을 덮고 나무를 옮겨와 심고 부스를 꾸미는 데 5개월이 걸렸다. 나무 크기는 7m50㎝~8m50㎝. 부스의 안쪽 천장이 뻥 뚫려 있는 모습이었다. 관람객들이 예거르쿨트르 부스에 들어서면 다른 곳과 달리 나무 냄새와 흙냄새,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서 느껴지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12억원대에 달하는 슈퍼카도 등장했다. 로저드뷔는 이탈리아 슈퍼카 람보르기니와 협업한 13억9500만원짜리 초고가 신제품 시계를 공개하는 자리에 람보르기니 ‘SC18 알스톤’ 차를 설치했다.
이 차는 중국 레이싱 선수인 푸쑹양이 구입한 차로, 로저드뷔는 푸쑹양이 창설한 세계 정상급 레이싱팀 FFF와 2016년 6월부터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람보르기니와의 협업을 기념한 주력 시계를 멋지게 전시하기 위해 푸쑹양에게 차를 대여해 부스에 들여놓았다.
로저드뷔가 람보르기니 차 앞에 전시한 ‘엑스칼리버 원오프’ 시계는 딱 1점만 생산한 제품으로, SIHH 첫날 싱가포르의 초우량고객(VIP)이 구입해 바로 품절됐다. 로저드뷔 부스 앞에는 슈퍼카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관람객들로 늘 북적였다.
파일럿워치를 주력상품으로 선보인 IWC는 부스를 기내처럼 꾸며 눈길을 끌었다. 빈티지한 소파와 일등석 고객을 위한 음료 바를 설치했다. 또 부스 한가운데 실제 경비행기를 가져다 놓아 관람객들의 ‘포토 스폿’이 되기도 했다.
IWC는 VIP를 초청한 갈라디너 쇼를 열고 그 자리에 ‘스핏파이어’ 항공기를 착륙시키는 이벤트도 열었다. 영국의 파일럿 매트 존스가 이 항공기를 착륙시킨 뒤 걸어나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올여름부터 스핏파이어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구 모형으로 꿈을 표현한 부스도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브랜드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SIHH에 두 번째 참가한 에르메스는 ‘꿈’을 테마로 시계를 제작하고 이에 걸맞게 부스를 구성했다. 영국의 디자인하우스 탄젠트 스튜디오가 제작한 커다란 지구 모형을 부스 한가운데 매달았다.
탄젠트 스튜디오는 도쿄대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한 히테키 요시모토가 설립한 디자인하우스다. 히테키 요시모토는 직경 3.5m에 달하는 지구 모형을 태양광 전지 소재의 삼각형 타일로 제작했다. 각각의 태양광 전지는 태양으로부터 삶의 에너지를 받는 사람, 동물 등 생물체를 상징한다. 지구를 공유하는 생명체인 인간이 지구에서 꿈꾸며 살아간다는 점, 태양과 은하계를 공유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설명이다.
이 지구 모형을 강조하기 위해 에르메스는 부스 안의 조명을 최소화했다. 사진을 찍으면 마치 우주 속 행성처럼 블랙과 화이트로 사진이 찍힌다. 디자이너는 시간을 공유하는 방식, 꿈을 꾸는 인간, 은하계를 공유하는 생물체 등을 표현하고자 했다. 부스 밖의 쇼윈도도 ‘꿈’을 주제로 구성했다. 우주비행사의 여정을 보듯 분화구, 혜성, 초신성, 목성, 화성, 웜홀, 푸른 행성, 새로운 바다 등을 각각의 윈도 안에 담았다.
에르메스 관계자는 “두 개의 달을 주제로 한 신제품 시계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선보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이라며 “단순히 제품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소비자와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제네바=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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