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송-(칼럼)-규제가격 제외하고 물가지표 보기(?)..GDP에서 반도체도 빼야 하나

입력: 2018- 05- 04- 오전 11:30
재송-(칼럼)-규제가격 제외하고 물가지표 보기(?)..GDP에서 반도체도 빼야 하나

(둘째 문단의 빠진 글자를 추가합니다. 이 칼럼은 저자의 개인 견해로 로이터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울, 5월04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규제가격을 제외하고 보면 인플레이션이 2%에 가깝다"

이환석 한국은행 조사국장이 지난달 12일 '2018년 수정 경제전망' 설명회에서 한 말이다. 공식 지표로 확인된 1분기 물가가 전망치보다 부진했지만 기조적 물가 흐름은 목표 수준에 거의 근접했다는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같은 날 열렸던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도 '규제가격을 제외한 물가'가 여러 차례 거론됐다. 한 금통위원은 "종합적으로 볼 때 규제가격과 일시적 요소들을 제외한 기조적 물가 흐름은 2%에 근접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경우 미약하나마 물가 상승 압력이 계속 유지되며 중기적으로 물가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고 밝혔고 다른 금통위원 역시 규제가격 제외 물가를 종합 판단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개념 명확하지 않은 '규제가격'

최근 들어 한은 고위 인사들의 언급에 자주 등장하는 '규제가격'의 역사는 그러나 길지 않다. 물가 통계에선 규제가격에 대한 마땅한 정의를 찾을 수 없다. 규제가격이 이처럼 부각된 것은 지난 2월 한은이 내놓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서다.

한은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규제가격은 정부의 직‧간접적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수요‧공급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며 "따라서 기조적 물가 흐름을 평가하는 데에는 규제가격의 영향을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에서 한은은 규제가격이 '공공서비스 및 전기‧수도‧가스요금, 담뱃값, 급식비, 보육비 등을 포함한다며 대략적인 정의를 밝혔다.

문제는 한은 내부에서도 '규제가격'의 명확한 정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그야말로 임의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보험료는 민간에서 결정되는 만큼 당연히 규제가격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 정책으로 실손보험료 인상 시기가 늦춰지면서 보험서비스료가 동결돼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면 어떨까? 규제가격일까? 올해 1월에 일어난 일이다.

규제가격이라는 표현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시장 통제라는 부정적인 함의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규제가격이라는 표현에서 이명박 정부 당시 집중관리 대상이었던 52개품목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당시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농산물 등을 집중관리 대상으로 지목하고 관리에 나섰지만, 물가 폭등세는 진정되지 못했다. 가격관리가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규제 대상이었지만 규제는 되지 않았다.

규제가격을 제외한 인플레이션 추이를 기조적 물가 흐름을 판단하는 지표 중 하나로 삼는 것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한은 당국자가 대외적으로 의사소통하는 자리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개념을 정책 판단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는 것이다.

▲GDP에서 반도체도 빼야 하나

통상 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 지표가 발표되는 달에 공개되는 산업생산 지표는 시장에서 큰 무게로 다뤄지지 않는다. 분기 GDP에 이미 산업생산 지표가 포함돼 있어 시장에서 '지나간 재료'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이는 어제의 재료가 아니라 '다가올 내일'을 한발 앞서 프라이싱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시장의 속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발표된 1분기 GDP와 3월 산업생산 지표 간에 확인된 간극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전산업생산 지표는 전달보다 1.2% 감소했고, 광공업 생산은 전달보다 2.5% 떨어져 0.5% 상승할 것이라는 시장 컨센서스를 크게 하회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수준으로 떨어졌고 설비투자도 5개월 만에 감소로 전환했다.

이는 불과 나흘 전 발표된 1분기 GDP의 낙관적 신호(전기비 1.1% 성장)와 크게 대비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통계 성격의 차이 때문이다. GDP는 일정기간 동안 국내에서 창출한 부가가치를, 산업생산은 생산량을 측정한다. 부가가치는 결국 인건비, 감가상각, 영업이익에서 투입되는 원자재가격을 뺀 것으로 측정되는데 한 상품당 이익이 많이 나는 상품일수록 부가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결국, 부가가치 기여도가 높은 산업군의 증가율이 클수록 GDP 증가율도 커지게 된다. 지난해부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반도체 부문의 성장 증가세가 GDP 지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3월 산업생산의 부진은 반도체 부문 성장에만 의존하고 있는 현재 국내경제의 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GDP 증가율과 GDP 증가율이 수렴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경기의 큰 방향을 보여주는 데는 GDP가 더 정확한 지표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GDP가 반도체 부문의 성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시야가 가려진다. 그렇다면 반도체 지수 제외 GDP를 만들어 국민들이 현재 경제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해야 하나?

GDP라는 지표 역시 완벽한 지표가 아니다. 디지털화라는 기술혁신이 가져온 소비자 잉여의 극적인 증가를 GDP라는 통계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도의 정보와 기술이 집약된 인터넷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급격히 늘어나며 소비자 잉여가 급증하고 있지만, GDP 통계는 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GDP가 실제 한 국가의 실질적 부를 계측하는 지표로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GDP가 경기변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보는 측이 '소비자 후생'을 반영한 GDP, '소비자 후생'을 반영하지 않은 GDP로 구분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실제 국가의 경제 상황을 더 풍성하게 반영은 하겠지만 주관적인 판단이 포함되는 이같은 분류는 계측을 어렵게 해 정책 결정에 오히려 혼선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한은의 올해 물가전망은 유효할까? 아직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1분기 물가 상승률은 당초 예상보다 부진했지만 4월 물가는 예상을 상회했다.

다만 '규제가격 제외 물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뭔가 의지가 개입돼 있는 듯해 다소 부담스럽다. '연말에 가서 봅시다' 한 마디면 되지 않을까?

(편집 유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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