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보이지 않는 고릴라’는 한 가지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가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합니다. 금융 선진국들이 블록체인 산업을 적극 육성하지만 국내에서는 투기 자산으로 바라보다 보니 규제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큽니다. 서울경제 디센터는 다른 나라들의 블록체인 산업 육성 전략을 알아보는 기획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찾아라’를 지난해에 이어 연재합니다. 이번 2탄은 돈버는 게임으로 알려진 ‘플레이투언(P2E)’을 중심으로 필리핀과 태국, 베트남 시장을 둘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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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업계에 따르면 필리핀은 지난해 11월 필리핀 블록체인 협회를 설립하고 마닐라에서 제1회 필리핀 블록체인 위크(PBW)를 열었다. FTX 파산 사태가 터진 직후였지만 PBW 행사장은 업계 관계자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했다. 초대 필리핀 블록체인 협회장으로 추대된 도널드 림(Donald Lim) 회장은 엑시인피니티 사례를 언급하며 “자동차 작동 원리를 몰라도 운전을 할 수 있듯 블록체인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트코인(BTC)이 전고점을 찍었던 2021년만 해도 택시 기사들까지 손님을 기다리는 짬짬이 스마트폰으로 엑시인피니티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블록체인에 대해 잘 몰라도 매력적인 서비스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림 협회장은 “인터넷이 등장했던 웹1, 소셜미디어가 주류가 됐던 웹2를 다 겪은 입장에서 웹3 확산 속도가 더 빠르다”고 강조했다. 림 협회장이 필리핀 정부가 공인한 필리핀 블록체인 협회를 세운 배경도 여기에 있다. 기존 웹1, 웹2 분야 기업이 웹3로 진입하는 걸 발 빠르게 지원하기 위해서다.
평균 연령 26세로 상대적으로 젊은 필리핀 인구 특성이 블록체인 서비스 확산 속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오스카 탄 아빙 아노토이즈 콜렉티버스 대표는 “필리핀은 전세계에서 메타마스크 지갑을 최다 다운로드 한 국가”라며 “필리핀 인구 평균 연령이 낮아 신기술을 유연하게 수용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핸드폰 텍스트 메시지가 등장했을 때나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가 나왔을 때도 필리핀에서 가장 빠르게 새로운 서비스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메타마스크는 암호화폐 지갑으로, 관련 서비스를 이용할 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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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대다수가 암호화폐 지갑 메타마스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회를 포착한 기업들도 필리핀 시장을 적극 노리고 있다. 가장 큰 진입장벽으로 여겨지는 암호화폐 지갑 인프라가 이미 구축돼 있기에 킬러 서비스만 나오면 확산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이비 페르난데스 마사야토 게임즈(Masayato Games) 최고 마케팅 책임자(CMO)는 “앞으로 NFT는 검색엔진최적화(SEO)처럼 업계에서 당연한 수단으로 여겨질 것”이라며 게임 업계에서 NFT를 활용하는 게 보편화될 것이라 내다봤다. NFT를 활용한 P2E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이 공존하며 생태계가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필리핀 기반 NFT 마켓플레이스 플레이덱스를 이끄는 잔 다니엘 라보라다(Jan Daniel Laborada) 대표는 “능력 있는 게임 개발자들이 웹3에서 기회를 엿보고 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면서 “이는 앞으로 매스 어덥션(Mass adoption)이 이뤄질 것이란 신호”라고 전했다.
필리핀 정부 차원에서도 블록체인 산업을 적극 밀어주고 있다. 제1회 PBW에는 정보통신부 장관이 직접 참석해 시장 부흥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림 협회장은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산업이 발달한 필리핀은 아시아의 블록체인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필리핀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BPO 산업은 콜센터, 소프트웨어 개발 등 각종 업무 과정을 위탁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BPO 산업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분야 산업과 연결돼 있어 인프라 측면에서 확장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