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전북 전주시 효성 탄소섬유 공장에서 열린 탄소섬유 신규투자 협약식에 참석한 뒤 탄소섬유를 사용해 3차원(3D) 프린터로 제작한 전기자동차에 탑승해 조현준 효성 회장(왼쪽)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문 대통령의 소재산업 국산화 산업현장 방문은 지난달 시작된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탄소섬유 등 100대 핵심 전략품목에 7조~8조원 이상의 대규모 예산을 투자해 특정 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전북 전주시 효성 탄소섬유 공장에서 열린 신규투자 협약식에서 “핵심 연구개발(R&D)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도 추진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효성은 이날 전주공장에 1조원을 투자해 탄소섬유 생산량을 현재보다 10배 이상 늘려 2028년 글로벌 3위를 달성하겠다는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된 이후 문 대통령이 소재·부품 분야 산업현장을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날은 일본을 직접 거론하는 대신 두 차례에 걸쳐 ‘특정 국가 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책임 있는 경제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핵심 소재의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며 탄소섬유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한 연구개발, 인력 양성 등의 전방위 지원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탄소섬유는 미래 신산업의 뿌리에 해당하는 핵심 첨단 소재”라며 “뿌리가 튼튼해야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탄소섬유를 키워 소재강국 대한민국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고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전북 익산에 있는 하림 닭고기 가공공장에서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가운데)으로부터 닭다리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익산=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 대통령, 신규 투자 협약식 참석 '克日' 의지
“탄소섬유사업을 더욱 키워 ‘소재강국 대한민국’ 건설의 한 축을 담당하겠습니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51)이 20일 ‘탄소섬유산업 독립’을 선언했다. 탄소섬유는 수소전기자동차와 항공기 등의 소재로 쓰이며, ‘미래산업의 쌀’로 불린다. 조 회장은 2028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글로벌 ‘톱3’ 탄소섬유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면서 소재·부품산업 육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일본 의존도가 높은 탄소섬유 분야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수소경제의 핵심동력 탄소섬유
효성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전라북도 및 전주시와 ‘탄소섬유 신규투자 협약식’을 열었다. 효성첨단소재 전주공장의 생산설비를 대폭 늘리는 내용이다.
효성은 연 2000t 규모(1개 생산라인)인 전주공장의 탄소섬유 생산 능력을 2028년까지 연 2만4000t(10개 생산라인)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10개 생산라인 증설이 끝나면 현재 2%(11위)인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10%(3위)로 높아질 전망이다.
투자 확대에 힘입어 전주 공장의 고용 인원도 400여 명에서 2300여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효성은 내다봤다.
효성은 이날 일진복합소재(수소 저장용기), KAI(항공기 부품), SK케미칼(탄소섬유 중간재), 밥스(로봇팔), 삼익 THK(로봇장치) 등 탄소섬유를 공급받는 기업과 공동 기술개발 등의 내용을 담은 업무협약(MOU)도 맺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탄소섬유 기술 개발 등 산업생태계 구축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탄소섬유는 철에 비해 무게는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10배 이상 강한 신소재다. 골프채 등 레저용 제품부터 자동차 내외장재와 우주항공용 소재로 두루 쓰인다. 효성은 2011년 일본과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탄소섬유(브랜드명 탄섬) 독자 개발에 성공했다.
탄소섬유는 수소경제를 뒷받침할 핵심 동력으로 꼽힌다. 수소전기차와 수소충전소용 저장용기의 핵심소재로 탄소섬유가 쓰이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기체인 수소연료를 안전하게 보관하려면 높은 압력을 견딜 수 있는 탄소섬유가 필수다. 20억달러 규모인 세계 탄소섬유시장 규모는 연평균 10% 이상 커져 2030년엔 1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업계에선 예상하고 있다.
○50여 년간 소재 ‘한우물’ 판 효성
효성은 1966년 창업 후 ‘소재 한우물’을 파며 기술 독립 외길을 걸었다. 1971년 국내 최초 민간기업 부설연구소인 효성기술연구소를 세운 이유도 원천기술 확보에 대한 의지 때문이었다. 효성은 1992년 ‘섬유의 반도체’로 불리는 고탄성 신축섬유 스판덱스를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개발했다. 효성의 스판덱스 원사 브랜드인 ‘크레오라’는 2000년 이후 글로벌 1위(시장 점유율 기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효성은 스판덱스 등 의류용 원사뿐 아니라 타이어코드와 에어백용 원사 등 산업용 원사 분야에서도 세계 1위다.
효성은 2000년대 초반 탄소섬유 개발에 뛰어들었다.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선진국은 탄소섬유를 전략물자로 지정해 기술 유출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일본의 도레이와 도호, 미쓰비시레이온 등이 세계 시장의 70%가량을 점유했다. 다들 투자를 망설일 때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은 “지금이 투자 기회”라며 탄소섬유 개발에 대한 투자 확대를 지시했다. 철을 대체할 수 있는 탄소섬유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 가치가 무궁무진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효성의 탄소섬유 개발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도 한몫했다. 전라북도와 전주시는 효성의 공장 용지 매입과 건설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주시는 효성을 지원하기 위해 국내 지자체 중 처음으로 ‘탄소산업과’라는 전담조직까지 신설했다. 조현준 회장은 이날 협약식에서 “독자개발에 대한 기술적 고집이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세계 1위를 달성하게 했다”며 “또 다른 소재사업의 씨앗을 심기 위해 도전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형호/김보형/강현우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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