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는 1996년 ‘제1차 정보화촉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인터넷 시대가 본격화하는 것에 대비해 정보화에 전폭적인 투자를 감행,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선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2000년까지 투자금액 가운데 정부 예산만 10조원. 연평균 2조원 수준이다. 이 기간 정부 총예산이 연평균 약 76조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전체의 2.6%에 이르는 규모다.
과감한 미래투자는 비교적 이른 시간 내 열매를 맺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2001년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세계 최초로 2G 이동통신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 상용화에도 성공했다. CDMA 상용화는 삼성전자, LG전자 휴대폰이 세계 강자로 올라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올해 정부 예산은 470조5000억원에 이른다. 1996~2000년보다 여섯 배 넘게 나라살림이 커졌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투자는 과거와 비교해 민망할 정도로 미미하다. 지난해 8월 문재인 정부가 3대 전략투자 분야, 8대 선도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예산 규모는 5조100억원이다. 전체 예산의 1.1%에 그친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수소경제, 미래자동차, 드론, 바이오헬스 등 13개 산업 투자규모가 과거 정보화산업 하나에 대한 투자보다 적은 셈이다.
김대중 정부 때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1990~2000년대만 해도 전략적인 예산집행을 통해 미래산업을 선도하자는 게 재정정책의 중심이었다”며 “지금은 그때보다 경쟁이 더 치열해졌는데도 미래 투자는 소홀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돈을 쓰려면 제대로 써야 하는데 재정정책이 표심을 얻기 위한 현금 퍼주기 복지와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현 정부는 3년 연속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지만 용돈 벌이 수준의 단기 일자리 늘리기, 사회간접자본(SOC) 공사기간 단축 등 성장동력 확충과는 거리가 먼 사업만 반복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언급에 신중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추경 등 재정 지출은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할 정도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극심한 수출 부진도 근본적으로는 그간 미래 투자를 소홀히 한 결과”라며 “5세대(5G) 이동통신, 자율주행차 등 핵심 유망산업에 대한 기술 로드맵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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