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출처=뉴시스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미국 대통령 선거가 박빙의 승부를 연출하고 있는 가운데, 차기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유가의 미래가 판이하게 갈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석유 업계에서는 조 바이든 미 민주당 대선 후보의 승리가 유가 약세로 이어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이란 이슈, 정확히는 이란의 원유 수출 재개와 이에 따른 원유 공급 과잉 가능성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임기 당시 체결된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란 제재를 복원하는 등, 대이란 강경 노선을 유지해 왔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을 지냈던 바이든 후보는 이란 핵 합의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밝히며 비교적 온건한 대이란 기조를 예고했다. 더불어 바이든 정권의 초대 국무 장관이나 국가 안보 보좌관 후보 등으로 거론되고 있는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도 이란 핵 합의를 이끈 주역 가운데 한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란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시 원유 수출이 요원해질 가능성이 높고, 바이든 후보가 승리하면 원유 수출 재개의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는 이란 제재 완화의 의지가 있는 바이든 후보의 집권만으로도 강세 전환이 어려울 것"이라며 "물론 고유가를 싫어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가 무조건적으로 유가 강세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는 없지만, 강세 전환의 불씨를 키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시장은 저유가 흐름에 베팅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미국 대선과 관련된 불확실성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국제 유가는 이틀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지난 2일(현지 시간) 3% 넘게 급등한 데 이어 3일에는 2% 안팎으로 오른 것이다. 시장은 조 바이든 미 민주당 대선 후보의 승리 가능성에 주목한 분위기다.
바이든, 이란발 원유 공급 과잉 야기하나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출처=뉴시스
미국 석유 산업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바이든 후보가 미 대통령이 될 경우 세계 원유 공급이 하루 평균 200만배럴 늘어나면서 공급 과잉이 심화될 것이라고 지난 1일 전망했다.
미국이 이란 제재, 즉 이란 원유 금수 조치를 완화하면서 이란은 일 평균 200만배럴의 원유를 수출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바이든 후보는 이란 핵 합의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해당 매체에 따르면 이미 이란 지도부에 핵 합의 준수 전제 아래 외교를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같은 일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는 않겠으나, 세계 석유 소비가 내년 말까지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 200만배럴씩 추가적으로 공급되는 원유를 처리하기에 시장은 너무 취약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한 이란산 원유의 복귀는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주요 10개 산유국)의 원유 감산 노력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현재 OPEC+는 유가 안정을 위해 원유 생산을 하루 770만배럴씩 줄이고 있으며, 나아가 내년 1월로 계획한 증산 시점을 같은 해 상반기 말로 연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란의 원유 시장 복귀가 예상보다 지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바이든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이란 핵 합의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기보다는 오는 2021년 6월에 열릴 이란 대선까지 기다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현실적으로 미국은 동맹국이자 이슬람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이란의 원유 수출이 미뤄질수록 원유 시장과 유가가 받을 충격은 줄어들 것"이라 분석했다.
이란 "美 대통령 누가 되든 뭔 상관…행동이나 잘하라"
이란은 대체적으로 온건한 대이란 정책을 예고한 바이든 후보의 당선을 바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지만, 이란은 관망세를 보이는 모습이다.
현지 매체인 IRNA 통신에 따르면,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이날 TV 연설을 통해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이란에는 어떤 영향도 없을 것"이라 말했다.
앞서 이란 외무부도 2일 "이란은 차기 미국 대통령에 관심이 없다"고 밝히는 한편, "이란이 관심을 두는 것은 미 행정부의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 이란이 제재로 입은 피해에 대해 보상하고 이란을 대상으로 벌이는 테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또 당국은 "미 대통령이 누구든 핵 합의에 복귀하고 다른 국가들의 합의 이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중단한다면, 이란은 이를 환영하고 원칙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 언급했다.
중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 추이. 출처=한화투자증권
대범한 태도를 연출하고 있으나, 사실 이란은 원유 수출 재개가 절실한 입장이다.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지난 2017년 하루 평균 400만배럴에 달했으나, 올해 4월부터 일 평균 200만배럴 미만으로 반토막 났다. 이란에게 유일하다시피 한 원유 수출처인 중국마저 이란산 원유 수입량을 2018년 3분기 하루 71만배럴 수준에서 2020년 상반기 일 7만배럴 이하로 급격히 감축했다. 이란은 현재 자가소비분 정도의 원유만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대선을 약 일주일 앞둔 시점인 지난달 26일에도 이란에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이란 석유부와 국영 석유 회사, 국영 유조선 회사 등을 테러 집단인 이란 혁명 수비대(IRGCC)와 시리아 아사드 정부를 지원한 혐의로 제재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란은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해 원유를 수출할 수 있는 송유관을 건설하고 있다. 이란 석유부는 지난 6월 약 1000km 길이의 '고레-자스크 파이프라인' 건설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해당 송유관은 이란 남서부 유전 지대인 부셰르주의 고레에서 시작해 남동부 호르무즈간주에 있는 자스크 항구까지 이어진다.
이란의 현 최대 원유 수출항은 걸프 해역의 깊숙한 안쪽에 위치한 하르그섬의 터미널로, 수출 물량을 싣은 유조선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사우디와 쿠웨이트, 이라크 등에서 나오는 유조선들의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의 30%가 오가는 주요 원유 수송로지만 종종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곤 해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란이 현재 이전하고 있는 새로운 원유 수출 기지인 자스크 항은 이 호르무즈 해협을 벗어난 오만만 연안에 자리해, 더 안전한 원유 수출이 가능해질 것으로 이란은 기대하고 있다. 이 고레-자스크 송유관은 하루 최대 100만배럴의 원유를 수송할 것으로 예상되며, 2021년 3월 1단계 공사가 완료될 예정이다.
해당 송유관이 완공되면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들에게는 지정학적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영훈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이란과 강대강 대치를 지속할 경우, 이 같은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유가 강세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박영훈 연구원은 "미국의 제재로 원유 수출이 어려운 이란이 10억달러(약 1조1400억원)가 넘는 비용을 원유 수출 기지 이전에 쏟아붓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국내 석유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레-자스크 파이프라인 같은) 석유 시설 구축은 장기간 걸리는 프로젝트라, (일반적인 산유국들의 경우) 심한 재정적 압박에 당면하지 않은 이상 코로나19 등 수요 위축 리스크도 감안하고 이를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는 한편,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송유관 건설 결정에 한 몫 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이란이 미국 정권 교체로 관계가 개선될 여지를 의식했으리라는 진단이다.
또한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경제 회복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발원지이나, 바이러스 여파에서 가장 빨리 탈출해 경기 회복을 이루어내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란의 송유관 신증설은 중국의 경제 회복에 따른 원유 수입량 증가를 감당하기에도 적합한 묘수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