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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꼬리 수익률' 190兆 퇴직연금 대수술…알아서 굴려주는 퇴직연금 나온다

입력: 2019- 04- 05- 오전 02:55
'쥐꼬리 수익률' 190兆 퇴직연금 대수술…알아서 굴려주는 퇴직연금 나온다
'쥐꼬리 수익률' 190兆 퇴직연금 대수술…알아서 굴려주는 퇴직연금 나온다

저조한 수익률 탓에 ‘애물단지’로 전락한 퇴직연금이 수술대에 오른다. 한 직장인이 금융회사 상담 창구에서 퇴직연금 유형별 안내를 살펴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kgang@hankyung.com

이르면 내년부터 금융회사가 퇴직연금 가입자의 자금을 알아서 굴려주는 ‘디폴트옵션(자동투자 제도)’이 도입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은 정기예금 금리보다 못한 연 1% 안팎 수익률에 허덕이고 있는 퇴직연금 제도 수술에 나서기로 했다.

4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당정은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을 도입하기 위해 연내 자본시장법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을 손질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디폴트옵션이란 확정기여형(DC형: 근로자가 직접 운용사를 골라 수익률을 관리) 연금 가입자가 별도의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더라도 금융사가 가입자의 투자 성향에 맞게 알아서 자산을 굴려주는 제도다. 연금 선진국인 미국 호주 등에서 장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퇴직연금 운용회사들의 상품 수익률은 대부분 연 1% 안팎이었다. 물가 상승률과 수수료 비용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퇴직연금 적립금이 190조원 규모로 불어났지만 수익률은 ‘쥐꼬리’라는 비난이 많다”며 “디폴트옵션 도입이 필요하다는 부처 간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조만간 제도 개선안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와 고용노동부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위한 법 개정에도 나설 방침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사업장 내 노사 및 전문가로 구성된 별도의 기금운용위원회(수탁법인 이사회)를 설립해 투자를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다. 같은 업종 내 사업장끼리 연합하면 연금기금처럼 ‘큰손’이 돼 운용사 간 수익률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

민주당 자본시장활성화 특별위원회(자본시장 특위)도 퇴직연금 개편에 힘을 싣고 있다. 자본시장 특위는 증권거래세 인하에 이어 퇴직연금제도 개혁을 두 번째 과제로 선정해 개편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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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10년차인 박인규 씨(38)는 성과급을 퇴직연금에 넣으면 세금을 덜 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오랜만에 퇴직연금 수익률을 확인해보다가 눈을 의심했다. 수익률이 2017년 연 1%대에 이어 지난해엔 -7%로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분통이 터진 박씨는 다른 운용사 상품으로 갈아타려 했지만 다른 퇴직연금 상품도 대부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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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수익률이 바닥을 기면서 국민들의 노후 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디폴트옵션(자동투자제도)’과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퇴직연금 제도 개편안을 추진하고 나선 이유다.

○방치된 노후자금에 디폴트옵션 처방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말 기준 190조원(추정치)에 달한다. 이 중 근로자가 근속기간 매월 급여의 일정비율(8.33%)로 납입한 연금을 직접 자산운용사에 맡겨 운용하고 그 성과에 따라 연금액을 수령하는 확정기여(DC)형이 46조4000억원(26.9%)에 달한다.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DC형 상품 가입자는 처음 가입 당시 운용 포트폴리오(자산 구성)를 정한 뒤에는 거의 관심을 끄고 지낸다. DC형 가입자의 91.4%가 운용 지시 변경을 하지 않았다. 가입자의 무관심 속에 국민 노후 자금이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정이 DC형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 도입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무관심하거나 바쁜 근로자가 일정기간 운용 지시를 하지 않고 적립금을 방치했을 때 금융회사가 가입자 성향에 맞게끔 알아서 운용에 개입해 적립금을 굴려주는 제도다. 금융투자협회가 미국 호주 사례를 통해 디폴트옵션 도입 유무에 따른 수익률을 단순 계산한 결과 연 6.4%포인트 차이가 났다. 디폴트옵션을 적용했을 때 수익률이 그만큼 높았다는 것이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 따르면 2013~2017년 기준 한국의 퇴직연금 연 환산 수익률은 2.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8%를 밑도는 최하위권이었다. 박진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디폴트옵션을 통해 전문가들이 투자자산을 꾸준히 바꿔주면 중장기 수익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연내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상 ‘설명의무 원칙’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법상 금융회사가 일반투자자에게 투자를 권유할 때는 무조건 설명 의무가 적용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투자자가 손실을 봤을 때 금융회사에 손해배상책임이 있다.

○퇴직연금도 연기금처럼 운용

근로자 스스로 퇴직금 운용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고수익을 올리기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저금리 시대에 예금을 기반으로 하는 확정급여형(DB형·개인이 아니라 회사가 운용사를 선정해 수익률 관리)의 수익률이 높게 나오기 어려운 데다 확정기여형(DC형·개인이 직접 수익률 관리)은 시장상황이나 상품별로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주요 금융회사가 굴리는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이 1% 안팎(2017년 전체 평균 1.88%)에 그치는 이유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도입되면 퇴직연금도 국민연금, 공무원연금처럼 별도의 조직(수탁회사)에서 운용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기업 및 근로자가 제각각 은행, 보험, 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와 계약을 맺는 현행 ‘계약형’ 구조와 차별화된다. 다수의 사업장이 참여하는 연합형 퇴직연금기금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협력사인 중소기업들끼리, 군산산업단지 내 이웃 기업끼리 직원들의 퇴직연금을 기금형으로 만들 수 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기금형이 도입되면 자본시장에 새로운 ‘큰손’들이 탄생해 운용사 간 수익률 경쟁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퇴직연금 법적 분쟁 가능성도

퇴직연금의 ‘쥐꼬리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기금형과 디폴트옵션을 도입할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이로 인해 법적 분쟁이 증가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황현일 법무법인세종 변호사는 “디폴트옵션 도입을 통해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에 대한 비중을 높일 수 있겠지만, 투자자가 충분한 설명을 받지 못한 상태로 손실을 보게 될 경우 책임 소지를 놓고 분쟁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에 무조건 설명의무 예외를 인정할 게 아니라 포트폴리오 조정 또는 위험사항이 생겼을 때 사전 통지하는 등의 완충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양은희 한국투자증권 연금사업본부 팀장은 “사업자로선 손실이 났을 때 누가 책임질 거냐가 가장 민감한 문제”라며 “퇴직연금을 개편하기 위해선 수익률 제고와 가입자 보호를 병행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퇴직연금

퇴직금을 안전하게 보전하면서 근로자 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목적에서 2005년 도입됐다.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퇴직연금을 회사가 운용한다. 회사는 근로자가 퇴직할 때 근속 연수와 퇴직 직전 3개월 평균 급여를 곱한 만큼을 운용 결과와 상관없이 퇴직연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스스로 운용한다. 회사는 매년 근로자의 퇴직연금 계좌에 정기적으로 한 달치 임금을 적립금으로 지급한다.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근로자가 이직하더라도 퇴직연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다.

디폴트옵션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일정 기간 별도 지시를 하지 않으면 사업자가 퇴직연금 자산을 알아서 굴려주는 제도. 안정형 중립형 공격형 등 연금 사업자가 마련한 투자상품 가운데 노사가 미리 결정한 방법으로 운용한다.

기금형 퇴직연금

퇴직연금을 특정 연금 사업자에 모두 맡기는 게 아니라 전문 위탁기관과 계약을 맺고 운용하는 방식이다. 노·사·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퇴직연금 운용 방향 등을 결정한다.

하수정/나수지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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