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31일 산업은행과 합작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도크에서 선박 건조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권오갑 부회장은 평소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려면 ‘빅2’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해왔다. 권 부회장은 “중국과 일본 조선사가 몸집을 더 불리기 전에 빅2 재편을 서둘러야 한다”고도 했다. 2014년부터 자산매각 등을 통한 자구적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개선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선 배경이다. 세계 1위 조선사(수주잔량 기준)인 현대중공업이 2위인 대우조선을 인수하면 글로벌 조선시장의 20%를 차지하는 매머드급 조선사가 탄생하게 된다.
현대重·산은 합작법인 신설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그룹과 합작해 ‘조선통합법인(가칭)’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대우조선 매각을 추진한다고 31일 발표했다. 조선통합법인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기존 현대중공업그룹 조선사와 대우조선을 거느리는 구조다. 그룹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는 현대중공업을 물적 분할해 통합법인의 최대주주가 된다. 산은도 대우조선 지분(55.7%)을 현물 출자하고 대신 신주를 받아 2대 주주가 된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형태로 1조5000억원을 투입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8일 현대오일뱅크 지분(19.9%)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에 매각해 1조8000억원을 확보했다. 현대중공업은 자금 부족 시 추가로 1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부실논란을 빚은 대우조선 자회사는 산은이 관리하기로 했다.
산은은 이날 삼성중공업에도 대우조선 인수 의향을 타진했다. 입찰에 두 곳 이상 참여하지 않으면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되는 국가계약법에 따른 조치다. 하지만 자구적 구조조정 중인 삼성중공업은 대우조선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저가 수주 사라질 듯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말 기준 세계에서 가장 많은 1145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의 수주잔량을 보유하고 있다. 2위인 대우조선(584만CGT)을 인수하면 세계 시장 점유율이 21.2%까지 늘어난다. 3위인 일본 이마바리(525만CGT)를 세 배 이상 웃돈다. 현대중공업(11개)과 대우조선(5개)을 포함해 16개 도크(배를 건조하는 작업장)를 갖추고 직원 수도 2만5000명에 달해 규모 면에서 사실상 경쟁상대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쳐지면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지난해 세계에서 발주된 LNG 운반선(71척)과 VLCC(40척) 가운데 현대중공업그룹은 각각 25척과 13척을 수주했다. 대우조선(LNG 운반선 18척, VLCC 16척)의 수주실적을 합치면 LNG 운반선 시장 점유율은 60.6%, VLCC는 72.5%에 달한다.
빅2 체제는 한국 조선업의 발목을 잡아온 ‘제살깎기’ 경쟁도 없애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조선 3사가 과당경쟁을 하면서 신조선가가 떨어진 측면이 적지 않은 만큼 저가수주 관행이 사라져 조선업황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인수가 잘 이뤄진다면 세계적인 조선 공급과잉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넘어야 할 산 많아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가 확정돼도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적자가 지속되는 현대중공업이 초대형 인수합병(M&A)을 감당할 만한 체력이 있느냐가 가장 큰 관심사다. 수주가 회복되는 선박과 달리 해양플랜트(원유·가스 시추설비)부문 수주는 여전히 부진해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조선과 건설기계, 정유 등 중후장대 업종에 치우친 현대중공업그룹의 사업 쏠림 현상이 심해지는 점도 부담이다.
중국과 조선 등 경쟁국의 견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과 합치려면 전 세계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매머드급 조선사의 탄생이 독점 체제 논란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중국이 한국 조선사 결합에 동의하지 않으면 부메랑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현대重, 터보기계 매각…비주력 사업 정리 '가속'
10조원 혈세먹은 대우조선, 20년만에 산은 품 떠날까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인수 제안서 수령…검토 필요"
산은 "대우조선 주식 현대중공업에 현물출자…조건부 M&A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