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수록 심화되는 홍해 지정학적 리스크
세계 주요 물류 통로인 홍해 인근 지정학적 리스크가 날로 커지고 있다. 미국과 영국군은 최근 예멘에 위치한 반군 본거지에 4차 공습을 단행했고 예멘 후티 반군은 하마스 지지의사 표명 이후 최근까지 다국적 상선과 유조선들에 약 30회 이상의 미사일과 무인기 공격을 단행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주요 수송로인 수에즈-홍해 루트는 전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원유, 액화천연가스(LNG)의 15% 가량을 책임지는 주요 해상 루트다. 현재 주요 선사들은 대체 루트인 아프리카 희망봉을 경유(9일 이상 추가 소요)하거나 인근 항구에 정박해 상황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고 있지만 홍해 리스크가 예상보다 장기화되면서 해상 운임료 급등과 부품 공급 차질 등 다양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 과거와 다른 공격, 후티 반군의 목적은?
최근 후티 반군의 공격을 살펴보면 과거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과거에는 소총으로 무장하고 몸값을 요구하는게 일반적이었고 단발성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공격의 행태를 보면 이란으로부터 강력한 지원을 받은 탓에 순항미사일과 무인기 공격으로 공격력을 크게 끌어올렸고 수개월째 무차별적인 공격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 주도의 다국적 함대는 친 이슬람 단체들의 여론을 의식해 방어적인 차원에서 대응만 해왔기 때문에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이 계속되는 점은 시장에서도 어느정도 이해를 하고 있으나 미국과 영국군이 이례적으로 수백 발의 미사일 공격으로 후티 반군의 본거지를 4차례나 타격한 이후에도 전혀 잦아들지 않는 공격이 도리어 후티 반군이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는데 오히려 일조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7일 후티 반군을 외국테러단체로 30일 뒤 지정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며 EU도 최근 물동량 차질 이슈 장기화 조짐이 보이자 홍해 지역 방어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후티 반군의 의도대로 이란이 주도하는 ‘저항의 축’ 세력에서 존재감을 전세계에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상승 압력
다만 홍해 이슈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유가에 대한 상승 압력은 제한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과 비OPEC+ 국가들의 계속되는 증산과 최근 OPEC+ 맹주국들의 수출가격 인하, 감산 의지 약화와 더불어 세계 전반의 수요 둔화에 대한 우려로 타이트했던 원유 수급이 완화된 측면도 있으나, 무엇보다 홍해 이슈가 직접적인 원유 생산량에 타격을 주지 않은 측면이 크다. 과거 운하와 해협 관련한 공급차질 이슈에 따른 유가 상승이 뚜렷하게 발생했던 경우는 후티 반군이 사우디 정유시설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해 하루 500만 배럴 가량의 생산차질이 발생을 하거나 다른 루트가 존재하지 않는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에 의해 차단되어 사우디, 쿠웨이트, 이란, UAE 등의 생산량 자체가 줄어들었을때 뿐이다. 이번 홍해 이슈장기화가 운임료를 높이기는 했지만 아프리카 희망봉(아시아-유럽간 +9일 추가 소요)을 경유하는 대체 루트가 존재해 수출제한으로 인한 생산차질 또한 발생하지 않았다. 더욱이 예멘이나 홍해 주변국인 지부티,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등이 주요 원유 생산국도 아니기 때문에 주변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에 따른 생산 감소 가능성도 낮다.
▶ 움직이기 시작한 큰 형님, 이란
통상적으로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은 모두 이란의 지원을 받아왔다. 과거 이란은 국제 여론을 의식해 직접적인 전쟁참여보다는 간접적인 지원을 선호해 왔는데, 지난 솔레이마니 이란혁명군 사령관 4주기 추모식에서의 테러(이란인 100명 사망)가 발생한 이후 후티 반군과 헤즈볼라에 보다 적극적이고 파괴력이 큰 무기 지원을 함과 더불어, 이라크, 시리아, 파키스탄 등 테러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는 단체 본거지들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전쟁리스크를 눈에 띄게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후티 반군 관련 리스크는 그들이 내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 종료 시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나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제한될 것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대로 이란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함에 따라 타격받은 국가들의 반격이나 과격한 도발행위에 대한 미국의 추가 제재 가능성 등이 향후 유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새로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