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모습.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아니고선 현금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결제 수단이 현금에서 카드로, 다시 카드에서 간편결제(페이)로 빠르게 진화한 데 따른 변화다. 보수적인 은행권도 ‘전자지갑(e월렛)’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변화하지 않으면 금융 거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생겨나고 있다.
○리브라 출격 선언에 은행권 출렁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13일 “요즘 국내 은행권의 최대 화두는 디지털머니로 거래하는 전자지갑”이라며 “그동안 금융 거래의 일부에 불과했던 디지털머니와 전자지갑에 대한 주목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도 “내년엔 디지털 사업 핵심 과제로 전자지갑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며 “모바일뱅킹과는 또 다른 차원의 금융결제 생태계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이 지난 6월 디지털머니 ‘리브라’ 출시를 선언한 게 은행권을 긴장시킨 계기로 꼽힌다. 내년 상반기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달러 연동 디지털머니를 출시해 송금, 결제 등 금융 거래 전반에 활용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파장은 컸다. 24억 명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이 디지털머니를 발행하고 운영하면 파급력이 클 것이란 관측에서다.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국가별 통화정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결국 페이스북은 규제 우려가 해소될 때까지 리브라 발행 계획을 미루기로 했다. 당장은 계획이 불발됐지만 국내 은행권엔 큰 자극제가 됐다는 전언이다.
○“변해야 산다”…고민 커진 금융권
올해를 기점으로 은행권의 디지털머니 관련 전략이 한층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KEB하나은행은 디지털머니 ‘하나머니’를 개발해 전자지갑 활성화에 일찌감치 나서고 있다. 올해 말 하나머니로 해외 주식을 매입하는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하나머니 전용 투자 상품도 기획 중이다. 지난 4월엔 해외에서 하나머니로 결제할 수 있는 ‘글로벌 로열티 네트워크(GLN)’ 서비스를 선보였다.
국민은행은 이달부터 서울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에 디지털머니로 결제하는 ‘커뮤니티페이(마곡페이)’를 시범 운영 중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전자지갑 관련 신사업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머니 ‘위비코인’을 개발한 상태다. 상용화 시기는 미정이지만, 언제든 때가 됐을 때 바로 출시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는 설명이다. 신한은행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가상화폐, 신용정보 등 디지털자산을 보관해 주는 ‘모바일 금고 서비스’를 개발했다.
은행권에선 이제 정보기술(IT), 핀테크(금융기술) 등 다른 영역 업체들과의 경쟁이 본격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디지털 전환’이 신한·국민·KEB하나·우리·농협·기업 등 주요 은행의 올해 신년사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이유다. 기존 사업 방식을 디지털 중심의 새로운 관점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디지털화폐 등장’이란 보고서를 통해 “돈의 가장 전통적인 형태인 현금과 은행 예금이 디지털화폐와 힘든 경쟁에 직면했고 심지어 패배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 보고서엔 “기존 은행이 생존하려면 서둘러 변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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