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무상교복, 농민수당, 생활임금…
지방자치단체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줄줄이 도입하고 있는 복지사업이다. 주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거나, 빈곤층에게 한정됐던 지원을 모든 계층으로 늘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정 지자체에서 시행하게 되면 다른 지자체들도 경쟁적으로 앞다퉈 도입하면서 빠르게 전국으로 확장됐다는 점도 특징이다. 2019년 경기도부터 시작돼 지난해 12개 광역 지자체가 도입한 무상교복 사업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이같은 흐름에서 유독 비껴난 광역지자체가 있어 눈길을 끈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다. 이들 지자체는 해당 정책을 도입하지 않고 있거나 가장 늦게 도입했다. 특유의 정치·사회 문화에서 원인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상복지 싫어하는 TK?10년 전인 2011년 오세훈 현 서울시장이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까지 했던 무상급식이 대표적이다.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이 이뤄지며 2018년 세종과 강원, 전북, 전남, 울산, 제주, 인천 등 7곳은 전면 무상급식이 이뤄졌다.
지난해 부산까지 13개 광역지자체에서 전면 무상급식이 실시됐지만 대구와 경북은 끝까지 시행하지 않다가 올해 막차를 탔다. 올해 마지막으로 무상급식을 시행한 곳은 이들 지자체와 함께 서울 대전 정도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밀어붙였던 무상교복도 마찬가지다. 이미 대부분의 지자체가 도입한 가운데 대구가 올해 도입하기로 했으며 경북은 최근 도입 논의가 무산됐다.
농사를 지으면 월 5만~20만원을 지급하는 농민수당도 마찬가지다. 대구와 경북에서는 여전히 도입 논의에 진전이 없다. 도 단위 지자체 중에서 농민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곳은 경북이 유일하다.
공공기관 산하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에 추가로 급여를 얹어주는 생활임금 역시 대구 경북을 제외한 15개 광역지자체가 모두 시행하고 있다. "복지정책에도 보수적"대구 경북 지자체 및 교육청 관계자들은 이같은 결과에 대해 재정여건을 들었다. 교육청 사업 역시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것이다.
지역 내에서 걷은 세금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재정자립도는 대구가 48.9%, 경북이 29.8%로 하위권이다. 하지만 이들 지자체보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한 광역지자체도 무상·보편 복지에 적극적인 경우가 많아 이같은 내용만으로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출신이 지자체장과 지방 의회를 오랫동안 장악하고 있는 지역 정치를 이유로 드는 이들도 있다. 보수정당의 특성상 복지보다는 투자에 힘을 실어 보편복지 정책 실행의 우선순위가 밀린다는 것이다.
경북도의회 관계자는 "농민수당과 생활임금 등은 정의당 의원 등의 발의로 논의가 이뤄졌다"며 "하지만 부족한 재정을 고려할 때 재정을 투자해야할 다른 분야의 중요성이 높아 보류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미 상당한 농민 지원을 그대로 두고 다시 지자체 돈으로 수당까지 주는데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고 덧붙였다.
이는 지역의 사회·문화적 정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유권자들인 지역민들의 관련 정책에 대한 요구가 적어 지역 정치인들 역시 의제 설정에 수동적일 수 있어서다. 대구 지역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거 때 복지 정책을 이야기하면 다른 지역에 비해 반응이 좋지 않다. '세금을 그렇데 써서 되겠냐'는 비판이 생각보다 많다. 복지는 진짜 어려운 사람들에 한해 필요하다는 정서다. 흔히 대구 경북 지역이 보수적이라고 하는데, 복지를 포함한 전반적인 제도 변화에 대해서도 비슷한 관점이라고 보면 된다."
대구교육청 관계자도 무상급식 도입이 다른 지역보다 늦어진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설명을 내놨다.
"다른 지역에서 무상급식을 한창 추진할 때 시행 여부를 학부모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설문조사를 통해 무상급식을 포함한 여러 항목을 제시하고 '이 중 어디에 교육재정을 추가 투입하는게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때 학부모 대다수는 무상급식보다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 투자에 손을 들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지방자치제도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에서는 지역에 따라 복지를 비롯한 제도 전반이 다른 사례가 많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집권한 25개 주에서 3개월 전인 6월말 주 정부의 실업급여 지급 프로그램이 중단됐다. "장기간의 실업급여 지급이 노동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당장 복지 수혜자 입장에서는 분노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최근 구인난이 심해지는 가운데 실업자는 줄어들지 않는 미국 고용시장의 역설을 보면 꼭 잘못된 조치로 보기도 어렵다.
보편복지에 미온적인 대구 경북의 움직임도 양면이 있다. 일단 진보진영에서 비판하듯 보수정당의 장기 집권으로 지역 정치가 지역민의 요구를 외면했을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공공기관 근로자에 대한 특혜로 볼 수 있는 생활임금 등 지자체의 보편·현금 복지에는 비판할 부분도 많다. 보편과 선별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복지 논쟁도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대구교육청의 무상급식 설문조사에서 보듯, 대구 경북의 튀는 행정에는 지역의 우선순위를 반영해 보다 생산적인 분야에 예산을 집행하려는 시도가 반영됐을 수도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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