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1800년대 중반 미국의 우유 배달산업은 최악 그 자체였다. 배달 날짜도 불규칙하고 품질도 엉망인데다 낙농업자들의 횡포도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낙농업자들은 상한 우유에 분필을 넣거나 신선한 우유와 상한 우유를 섞어 각 가정에 배달했고, 그 결과 1854년에만 상한 우유를 마시고 죽은 영유아가 8,000명 이상이라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심지어 낙농업계 카르텔은 일부 양심적인 낙농업자들이 다소 손해를 감수하고 양질의 우유를 제공하려는 시도마저 분쇄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정치인과 시민사회단체가 나섰으나 막강한 로비력으로 강력한 카르텔을 구축한 낙농업계의 집단 반발에 직면, 개혁은 번번히 무산됐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소시민들이 희생되는 끔찍한 비극이다.
2021년 대한민국 중고차 업계에서도 이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일부 몰지각한 중고차 업체들이 사기행각을 벌이며 국민피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허위 중고차 매물을 올려 현장에서 다른 자동차를 판매하는 행위는 ‘애교’ 수준이다. 지난 2월 충북 제천에 사는 최모씨는 중고차를 구매하기 위해 인천 중고차 매매단지에 방문했다가 문신을 한 남성들에게 위협을 당해, 200만원 트럭을 700만원에 억지로 구매한 후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이 정도면 마피아가 따로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고차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간 기준 약 22조원 규모로 추정될 정도로 거대한 중고차 시장을, 나아가 국민 삶과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시장을 더 이상 자정활동에 맡길 수 없다는 주장이다. 차라리 대기업이 시장에 진입해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만 중고차 시장은 과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두 차례 연속 지정된 후, 현재 그 기간이 끝났음에도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로 인해 시장이 개방되지 못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이어 마련한 유사 제도인 ‘생계형 적합업종’에 중고차 판매업종을 포함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고차 업체들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을 중심으로 ‘시장 개방’에 대한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최근 자동차시민연합 등 시민단체 6곳이 모여 결성한 ‘교통연대’를 중심으로 중고차 시장 전면 개방을 촉구하기 위해 시작된 온라인서명운동의 참여자 수가 10만명을 돌파한 배경이다.
결국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물론 모든 중고차 업체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미 국민의 기존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모노리서치가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 의뢰로 실시한 조사에서 ‘국내 중고차 매매시장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무려 80.5%가 ‘불투명하고 혼탁하며 낙후돼 있다’고 답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중고차 업계와의 상생을 전제로 시장의 개방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중고차 업계도 각성해야 한다. 1800년대 최악의 카르텔로 군림하며 횡포를 부린 미국의 낙농업계는 악명높은 범죄자 알 카포네의 우유시장 진출로 단숨에 무너졌다. 알 카포네는 우유 산업이 돈이 된다는 생각에 신선한 밀주를 만들어 팔던 노하우로 낙농업계들을 겁박, 최초로 우유에 유통기한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등 선진 우유 유통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 자체는 해피엔딩이지만 겁박을 받던 낙농업계의 심정은 오죽 씁쓸했겠는가.
업계는 대안도 없는 시장 개방 반대만 외치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시장 개방을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에도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지금, 알 카포네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