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은(고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향은고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주목해야 할 뜻 깊은 행사가 거행됐다. 국가보훈처는 21일 오전 11시에 서울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에서 「한국독립군 3대 대첩 제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 행사는 한국독립군의 중국 동북지역 3대 대첩으로 불리는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대전자령 전투의 승리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기념식은 한국광복군동지회 주관으로 진행되며 약사 보고, 기념사, 축사, 독립군가 합창, 만세삼창 등의 순서가 있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 중국 길림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 봉오동(鳳梧洞)에서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이 이끈 대한북로독군부의 한국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를 상대로 크게 승리한 전투다.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최초로 승리를 거둔 독립전쟁사의 기념비적 전투로, 삼일운동 후 결성된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다. 이후 독립군은 더욱 체계적으로 조직을 갖추게 되었고 무장 독립전쟁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기세가 오른 독립군은 이후 청산리 전투에서도 승리를 이어갔다. 청산리 전투는 1920년 10월 21~26일, 김좌진, 서일이 이끈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가 이끈 대한독립군이 주축을 이룬 독립군 연합부대가 만주 화룡현(和龍縣,) 청산리(靑山里), 백운평(白雲坪), 천수평(泉水坪), 완루구(完樓溝) 등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십여 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싸움이다. 청산리 전투는 독립군 최대의 전과를 거둔 대첩으로 한국 무장 독립전쟁사에 빛나는 전과를 올린 전투로 평가되고 있다.
대전자령 전투는 1933년 7월 1일에 지청천 등이 이끈 한국독립군이 한·중 연합작전을 통해 중국 흑룡강성(黑龍江省) 대전자령(大甸子嶺)에서 일본군을 초토화시킨 대첩을 말한다. 당시 한중 연합군은 대전자령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부대가 인근 지역을 이동하고 있던 한·중 연합군을 전멸할 계획을 세운 것을 간파하고 일본의 공격에 대비해 한국독립군과 중국군을 대전자령에 잠복시켰다 일본군을 전멸하고 많은 전리품을 쟁취한 전투로 독립군의 항일투쟁사에 기념할만한 압승을 거둔 전투였다.
한국독립군 3대 대첩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가 마땅히 기억해야 할 우리의 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토록 갈망했던 독립을 했고 그 후로 7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나라 잃은 설움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 밖에 없는 목숨마저 아낌없이 내던지고 전쟁터로 향하던 결의에 찬 눈동자와 비장한 발걸음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사실 필자에게는 독립전쟁사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일제 식민 탄압에 못 이겨 중국으로 이주했던 친가의 역사가 무장 독립전쟁이 치열히 전개된 1930년대 만주의 독립운동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조부모 세대의 소설 같은 옛 얘기로 들었고 그 역사적 의미와 기억의 책임은 몰랐다. 커서는 삼일절이나 광복절에 간혹 떠올리긴 했어도 살아있는 역사와 기억으로 기리지 못했다. 독립군 3대 대첩 100주년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 정체의 뿌리인 고난 극복과 정의 회복의 역사에 대한 기억이 우리들의 책임임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