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형 빌딩 등에 투자한 사모 부동산펀드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엉뚱한 연기금에 불똥이 튀게 됐다. 사진은 부동산펀드가 주로 매입한 서울 여의도 고층 빌딩들. 한경DB
국내 오피스빌딩 매매 시장의 ‘큰손’인 사모(私募) 부동산펀드들이 매년 수천억원의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 정부가 공모(公募) 부동산펀드 시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사모펀드 보유 토지에 대한 재산세 분리과세 혜택을 폐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해당 토지가 합산과세 대상이 되면 재산세율이 공시지가의 0.24%(지방교육세 포함)에서 0.48%로 높아질 뿐 아니라 종합부동산세(0.60~0.84%) 과세 대상이 된다. 인천국제공항공사도 공항신도시와 국제업무지구 등지에 보유하고 있는 토지가 재산세 분리과세 대상에서 빠지면서 매년 820억원의 세금을 추가 부담하게 됐다.
1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방세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내년 재산세부터 적용된다. 분리과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곳은 △38조원 규모의 사모 부동산펀드가 보유한 토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유한 토지 △3000㎡가 넘는 농협 하나로마트 토지 등이다.
부동산 펀드업계는 분리과세 혜택이 폐지되면 현재 연 5% 안팎인 상업용 부동산의 수익률이 1%포인트 이상 떨어져 오피스빌딩 매매 시장이 얼어붙게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선 분리과세 폐지로 세 부담이 연간 최대 3800억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모 부동산펀드의 핵심 투자자는 국민 노후자금이 담긴 연기금과 공제회”라며 “당장 세수를 늘리기 위해 미래 세대 노후자금의 수익률을 희생시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부자 겨냥 부동산펀드 과세 강화?
국민연금에 '부유세' 물리는 꼴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세금폭탄 우려에 냉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사모(私募) 부동산펀드가 소유한 토지에 적용하고 있는 재산세 분리과세 혜택을 폐지하기로 하면서다. 사모 부동산펀드는 주로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로부터 출자받은 돈으로 대형 오피스 빌딩 또는 물류시설 등에 투자하는 펀드다.
국내 부동산펀드 규모는 지난달 말 기준 38조9894억원에 달한다. 이 중 98%(38조2127억원)가 사모 부동산펀드다.
○상업용 부동산 투자수익률 하락 비상
한 자산운용사는 5000억원 규모 부동산펀드 조성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주요 출자자인 공제회로부터 출자를 보류한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도심 오피스빌딩 등을 사들여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에 재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정됐던 부동산 거래가 연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사모집합투자기구(사모 부동산펀드)가 소유한 부동산 토지를 재산세 분리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수익률 하락을 우려한 기관투자가들이 투자를 잇따라 유보하면서다.
지방세 특례가 폐지되면 사모 부동산펀드 소유 부동산의 토지 부분에 대한 재산세 과세 방식이 분리과세에서 별도합산과세로 변경돼 재산세율이 기존 공시지가 기준 0.24%에서 0.48%(지방교육세 포함)로 오른다. 면제됐던 종합부동산세(공시지가 400억원 이상은 0.84%·농어촌특별세 포함)도 부과된다. 국내 부동산펀드 자산 규모를 감안하면 세금 부담이 연간 적으면 1000억원에서 많으면 3000억원 이상까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펀드 수익률 하락도 불가피하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정부의 시행령 개정안이 적용되면 연 수익률이 평균적으로 1%포인트가량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도심 오피스빌딩의 연 수익률(자본환원율)이 5%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20%나 하락한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국토교통부가 과세표준인 공시지가도 급속히 올리고 있어 수익률 하락폭은 더욱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래 노후자금을 세수 확보 수단으로
행안부가 사모 부동산펀드의 분리과세를 없애기로 한 것은 ‘소수의 부자들이 주로 투자하는 펀드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행안부 관계자는 “소수의 고액 투자자만 참여하는 사모 부동산펀드에 세제 혜택을 유지하는 것은 과세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사모 부동산펀드에 개인 고액자산가가 투자하는 비율은 미미하다는 게 부동산 금융업계의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사모 부동산펀드는 대부분 만기가 5년 이상인 데다 까다로운 계약 조건도 많아 개인투자자는 거의 모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액 자산가들이 주로 투자하는 건 오히려 1000만원 단위로 돈을 넣는 공모 부동산펀드”라고 했다.
사모 부동산펀드 투자자 대부분은 일반 국민 노후자금을 굴리는 국내 연기금·공제회다. 투기 목적이 아닌데도 누진과세를 적용하고 종합부동산세까지 부과하는 건 국민 대다수에게 부유세 부담을 지우는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예컨대 국민연금은 지난달 말 기준 8조원가량을 국내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 세금 부담이 높아져 국민연금이 투자한 부동산펀드 수익률이 떨어지면 그 손실은 국민 몫이 된다.
○투자자 해외로 내쫓는 세제
연기금·공제회의 돈이 안 그래도 수익률이 낮은 국내 부동산 시장을 떠나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새 국내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라 기대수익률이 낮아진 상황에서 세금 부담까지 커진다면 해외투자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외 부동산펀드 설정액은 2017년 국내 부동산펀드 설정액을 추월했다.
주택시장으로 돈이 몰리는 것을 막겠다는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간접투자를 활성화해 국민에게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세제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런 지적에 정부 관계자는 “부동산펀드에 대한 세제 지원은 부동산 집합투자 활성화를 위한 한시적인 조치였다”고 말했다. 그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게 원칙”이라며 “연기금이 투자하는 다른 금융 상품에도 세제 혜택이 없다”고 했다.
오상헌/이현일/성수영/추가영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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