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그 사람의 과거다. 김조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61)의 손은 험했다. 손등과 손가락마다 상처 자국이 있었고, 손톱도 뭉개진 모습이었다. 대학 3학년 때 행정고시(22회)에 합격하고, 청와대(공직기강비서관)와 감사원(사무총장)을 거쳐 대학총장(경남과학기술대)까지 지낸 엘리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낫에 베여 생긴 흉터입니다. 경남 진양군(현 진주시) 미천면 시골집에서 다섯 살 무렵부터 소가 먹을 꼴(풀)을 베러다녔거든요. 여물(볏짚)을 작두로 썰다가 손톱도 많이 뭉개졌죠.”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지난 6일 서울 삼성동의 ‘홍영재 장수청국장’에서 만난 김 사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버스를 탔을 정도로 깡촌에서 자랐다”며 “하루 두 끼를 먹던 집의 유일한 반찬이 청국장이었다”고 했다. 소박한 청국장집을 떠올렸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청국장의 원료인 발효 된장을 넣은 ‘보쌈’과 ‘전복찜’ 등은 고급 한정식에 더 어울릴 법했다. 레스토랑을 연상케 하는 실내도 고릿한 청국장 냄새가 풍기는 시골집과는 달랐다. “반전의 연속”이라고 농을 던지자 그는 “내가 걸어온 길이 그렇다”고 맞받았다.
우연히 찾아온 고시의 꿈
김 사장은 고구마를 넓게 얹은 쌀밥부터 한 숟가락 떴다. “배를 곯아야 했던 시절, 구황(救荒)작물로 쓰였던 고구마를 보니 고향 생각이 나네요. 300여 가구가 살던 마을인데 중학교를 다닌 사람이 없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중학교에 진학할 거냐’고 물어서 중학교란 존재를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 형편에 공부는 해서 뭐하냐’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를 간신히 마쳤다. 그리고 학업은 중단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을 뒷산에 올라 땔감용 나무나 베던 그에게 우연히 만난 옆동네 선배가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해줬다. 진주고에 진학하면 면서기(9급 공무원)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것. 농사짓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길로 짐을 꾸려 진주로 갔다. “기초가 부족했지만 딱 한 달간 교과서를 통째로 외웠더니 다행히 합격했더라고요.”
김 사장은 면서기를 목표로 진주고 3학년 때 응시한 경상남도 9급 공무원 시험에도 붙었다. 시골 청년의 동화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하필 발령이 미뤄졌다. 꿈꾸던 면서기가 되려면 1~2년은 꼬박 기다려야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대학(영남대 행정학과) 원서를 주더군요. 임용도 기다릴 겸 대학에 가서 행정고시(5급 사무관) 준비를 해보라고.” 또 다른 시작이었다.
단기간에 끝낸 수험 생활
청국장으로 맛을 낸 향긋한 꿀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물며 그가 말을 이어갔다. “공부는 목적(행시 합격) 달성을 위한 수단인 만큼 최대한 빨리 끝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는 하루에 13시간씩 수험공부에 매달렸다. 400페이지 분량의 경제학원론을 시간당 8페이지씩 읽어 내려갔다. 나흘 만에 1회독을 끝냈다. 2차 시험을 앞둔 마지막 한 달 동안은 18시간 이상 책과 씨름했다. 행시 1, 2차를 1년6개월 만에 합격한 비결이다. 김 사장은 “진주고 입학시험 공부 때 몸에 밴 집중적인 공부법이 효과를 봤다”고 했다. 싱글 플레이어(핸디캡이 한 자릿수) 수준인 김 사장의 골프 실력도 단기간에 집중한 결과물이다. “1994년 미국 연수 시절 골프채를 처음 잡았습니다. 새벽 4시부터 하루에 4라운드 72홀씩 돌았어요. 한 달 만에 싱글을 했습니다.”
그의 ‘집중력 강의’는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미국 프로농구의 전설적 3점 슈터인 레지 밀러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포함해 10만 번씩 슛 연습을 했다잖아요. 공부나 운동이나 몸이 먼저 기억할 정도로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단순 비리적발 대신 정책감사
김 사장이 막걸리 잔을 들었다. 구수하면서도 깔끔한 청국장 한 숟가락에 막걸리의 탄산감이 더해졌다. 얘기는 25년간 근무한 감사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가 공직에 입문한 1980년대만 해도 한국 행정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됐다고 했다. “감사를 나가면 피감기관에서 서류를 보여주며 ‘어차피 제대로 된 게 없으니 아무거나 지적할 사항을 고르세요’라고 할 정도였어요.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업무 시스템이 없었던 거죠.” 1985년 한국전력 감사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한전은 당시 “전력이 부족하다며”며 3조원대 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 그런데 어디에서 얼마큼 전기가 부족한지에 대한 근거가 없었다. 질문을 하면 본부장은 실장에게, 실장은 과장에게 떠넘길 궁리만 했다. “나중에 따져보니 1950년대 미국이 원조해준 노후 화력발전소 생산 전력을 근거로 전기가 부족하다고 했더라고요. 1년에 60일은 고장으로 쉬는 발전소인데.” 감사 이후 발전소 건설 계획은 백지화됐다. 한전도 발전소 건설비용 대출 이자 3000여억원을 아낄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할 때도 인사 검증 매뉴얼을 마련해 ‘시스템 인사’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인사 문제와 관련해 ‘김 비서관 생각은 어때’라고 물으면 보고한 서류에 답이 있다고 말했어요. 그럼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개개인의 감정이 들어가면 시스템 인사가 돌아가질 않죠.”
공직 시절부터 김 사장이 후배들에게 강조해온 것은 글쓰기 능력이다. 보고 들은 것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글로 정리할 수 있어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조직의 시스템도 작동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책, 신문과 같은 활자 매체를 꾸준히 읽을 것을 권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진주고 시절 학교 도서관에 있던 3000여 권의 장서 중 사전을 제외하고 빠짐없이 읽었다고 했다. “많은 지식과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표현을 제대로 못하면 활용할 수가 없어요. 감사원 시절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섯 줄로 요약해 글로 써봐라’는 숙제를 내주곤 했습니다.”
“사장이 간섭하면 업무 효율 떨어져”
김 사장이 KAI 대표이사에 취임한 2017년 10월은 방산비리와 분식회계 사건 등으로 회사가 어수선할 때였다. 감사원 출신답게 징계의 칼을 휘두를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외부 전문가와 직원들이 참여하는 ‘경영혁신위원회’ 출범이었다. 위원장도 외부 인사(김호중 건국대 경영대학원 교수)에게 맡겼다. 혁신위는 1446건에 달하는 내부 의견을 수렴해 조직을 개편하고 채용, 승진 등 인사제도를 개선했다. 김 사장은 “매출이 3조원에 달하는 KAI 사장이 A부터 Z까지 일일이 간섭하면 핵심 분야에 집중할 수 없다”며 “사장의 권한을 줄이고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회사가 돼야 한다”고 했다. 대신 고시 공부 때처럼 핵심(수주)에 집중하기로 했다. 작년 말 조직개편을 통해 김 사장을 위원장으로 한 전사수주위원회를 신설한 이유다. “영업 쪽은 수주를 위해 입찰 가격을 낮추려 하고, 생산 쪽은 손실을 걱정해 입찰 가격을 올리려 하니 사장이 직접 나서서 교통정리를 할 수밖에 없더군요.”
식사를 마칠 때쯤 후식으로 팥빙수가 나왔다. 달달한 팥이 청국장의 텁텁함을 씻어냈다. KAI는 2030년까지 연 매출 2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KAI 사장을 맡은 지 벌써 16개월이 흘렀습니다. 임기가 3년(36개월)이니 20개월쯤 남았네요. 개발부터 양산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항공우주사업 특성상 임기 안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보다 ‘땐땐한(딴딴하다의 경상도 사투리)’ 회사를 만드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1999년 삼성항공과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 등 세 회사의 항공 부문이 합병해 출범한 국내 유일의 항공기 제작업체다. 기본훈련기(KT-1)를 시작으로 고등훈련기(T-50)와 경공격기(FA-50), 한국형기동헬기(KUH-1) 등을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2조7894억원, 영업이익 1444억원을 기록했다. 창립 초기엔 군수 비중이 86%를 웃돌았으나 2017년 취임한 김조원 사장이 민항기 부품 공급 확대에 나선 결과 작년엔 민수 60%, 군수 40%로 균형 잡힌 사업구조를 갖추게 됐다. KAI는 앞으로 한국과 아시아 시장에 적합한 50~70석 규모의 민항기를 개발해 보잉, 에어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항공우주업체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김조원 사장의 단골집 홍영재 장수 청국장
청국장으로 암 극복한 의사가 문 연 퓨전 한식전문점
청국장으로 암을 극복한 일화로 유명한 홍영재산부인과 원장이 문을 연 퓨전 한식 전문점이다. 홍영재 원장은 2001년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콩팥 한쪽을 다 잘라내고, 대장을 30㎝ 정도 도려내는 대수술을 받은 뒤 항암치료 등으로 몸무게가 15㎏이나 줄었다. 식욕 감퇴와 구토 탓에 고생하던 그는 청국장을 먹으면서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콩을 원료로 한 청국장은 발효 과정에서 항암효과가 있는 각종 항산화물질을 많이 만들어낸다. 청국장의 식물성 단백질은 인체에도 쉽게 흡수된다. 청국장에 함유된 아미노산은 숙면을 도와주고 통증을 완화시키며 지방대사를 촉진하고 간의 해독작용도 돕는다.
청국장 보급을 위해 식당까지 연 이유다. 입맛을 돋우는 죽부터 꿀과 청국장으로 맛을 낸 허니토마토, 메인 메뉴인 청국장까지 콩을 주제로 한 코스요리가 제공된다. 조미료를 쓰지 않아 맛이 깔끔하다. 후식을 포함해 12개 요리가 나오는 장수 코스(2만9900원)가 기본이다. 궁중전복찜이 추가된 오색 코스(4만5000원), 새우&소고기 고추잡채와 육전 파무침이 추가로 나오는 백세 코스(5만5000원), 홍어 삼합 등이 포함된 골드 코스(6만5000원) 등이 있다. 다양한 크기의 룸이 마련돼 가족 모임에 적합하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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