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두고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노을이 산호초 빛깔로 번지는 퇴근길 하늘, 벚꽃잎이 머리 위로 흩날리는 어느 봄길. 긴장을 잠시 내려놓고 점심 메뉴에 집중하는 직장인들, 세상 모르게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얼굴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듭니다. 카메라 앱(응용프로그램)을 켜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뭔가 아쉬웠습니다. 처음엔 아쉬움의 실체를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쉽게 찍은 만큼 쉽게 지우고 있다는 것을. 이 아쉬움에서 벗어나려 미러리스 카메라를 마련하고 필름 카메라도 샀습니다. 그때그때 골라 쓰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누군가 온 얼굴이 주름지도록 함박웃음을 지을 땐 미러리스 카메라를 썼습니다. 당장이라도 웃음소리가 들릴 듯 생생하게 담겼습니다. 추억을 되짚는 듯한 느낌을 담고 싶을 땐 필름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손 떨림을 잡아주는 기능은 없지만, 손 떨림마저도 몽환적인 빛 번짐으로 그려내줬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가면 어떤 선배는 말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되는데 뭐하러 무거운 걸 들고 다니냐”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아날로그의 감성을 이해 못 하는 사람 같으니….’
일상을 간직하고 싶다는 욕망이 커질 때 ‘291 포토그래프’(사진) 개장 소식을 들었습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5층에 문을 연 사진 관련 편집숍입니다. 그래서 11일 바로 달려갔지요. 매장에는 A4 용지 크기의 사진 작품 500장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작가와 작품명이 없어 본능적으로 끌리는 작품을 골라 살 수 있습니다. 그 아래에 있는 선반을 열어 판매용으로 정리된 상품을 집을 때에야 누가 어떤 생각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설명하는 글귀가 등장합니다. 1장 1만원, 3장 2만원. 누군가 정성 들여 포착한 ‘작품’을 이 가격에 들일 수 있다는 건 참 매력적입니다.
전시 거리도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35㎜ 필름 카메라를 만든 라이카의 한정판 제품,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할 때 달 표면을 찍는 데 썼다는 핫셀블라드의 카메라 보디와 렌즈 등을 볼 수 있었지요. 독립 서점에서나 만날 수 있던 사진작가들의 사진집도 한쪽에 마련돼 있습니다.
매장 이름은 1910년대 세계 최초로 사진을 상품으로 유통한 미국 사진작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가 운영하던 뉴욕 5번가에 있던 화랑의 주소 ‘291’에서 따왔다고 하네요. 이곳에서 사진이 팔려 수익이 나면 사진작가들에게 나눠준다고 합니다. 소중한 순간을 잡아두기 위해, 그리고 그 순간을 잡기 위해 수백 번 셔터를 눌러야 하는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이번 주말 291 포토그래프를 한 번 더 찾아갈 생각입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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