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금법은 가상자산사업자가 신고를 하면 당국이 심사를 진행해 신고 수리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격을 갖춘 사업자라면 기한내 누구나 신고할 수 있다. 당국은 심사를 통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해 주면 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가상자산 사업자는 신고 접수 전 부터 금감원과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사전 확인을 받아야 한다. 서류 접수 전부터 일종의 심사를 받는 것이다. 당국은 서류 하자 또는 미비로 인한 서류 반려를 방지하기 위한 성격이라지만 엄밀히 말하면 월권이다. 신고 이후 심사 과정에서 서류 누락이 있다면 보완을 요청하면 되고, 문제가 있다면 탈락시키면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수리를 전제로 한 신고제’ 인 특금법의 본래 취지와도 맞다. 하지만 당국은 법에도 규정돼 있지 않은 '사전 서류 제출'을 무기로 업계를 지나치게 옥죄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유는 이렇다. 가상자산사업자들은 특금법에 따라 신고 서류를 모두 준비해 놔도 자신들이 언제 신고 접수를 할지 모른다고 답답해했다. 당국이 언제 서류 사전 검토를 마치고, 접수를 진행해라고 알려줄지 몰라서다. 시험 문제를 다 풀고 답안지를 내려고 하는데 시험 종료 종이 울릴 때까지 시험 감독관은 답안지를 걷어들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뭐가 다른가. 사업자들은 아마 새까맣게 속이 타들어갔을게다.
이미 신고를 마친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대 거래소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늦은 오후까지 사업자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저녁 8시를 넘어 입장을 바꾼 거래소도 있었다. 업계에서는 거래소의 입장 번복 배경에 금융당국의 사전 심사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거래소들은 신고 접수 사실을 공개하는 시점도 선택하지 못했다. FIU 홈페이지에 사업자 신고 현황이 업데이트된 후에 대외 공개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밤 8시가 넘은 시각에도 예외는 없었다.
싱가포르·미국·일본 등 암호화폐 선진국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관련 법규를 만들고 신고제를 시행했다. 이에 투자자는 신고를 마친 업체를 선택할 수 있었다. 국내처럼 이용하는 거래소가 없어질까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은 없었다.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현재 이용 중인 거래소가 언제쯤 신고를 접수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마냥 기다려야 했다. 당국의 대응을 보면 투박함 그 자체다. 시장에 무관심으로 대응하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권고안 이후 발등에 불 떨어진 듯 규제안을 마련한 탓이다. 투자자 보호에 소홀한 쪽은 사업자들이 아니라 당국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