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번째 문단의 금리 조정 방향을 정정합니다)
서울, 11월29일 (로이터) 임승규 기자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초기부터 강조한 것은 시장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한 신뢰구축이다. 취임사에서 그는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정책 운용과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정책효과를 제고하겠다"고 밝히며 소통하는 통화당국의 의지를 피력했다.
시장과의 의사소통을 강화하려는 그의 의지는 실제 '액션'으로 이어졌다. 이 총재는 2015년 3월 금융시장 참가자와 학계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 자문회의'를 신설해 통화당국과 시장 간 의사소통의 내용 및 수단, 개선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받도록 했다. 한은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유튜브, 플리커 등을 통해 통화정책에 대한 대국민 소통을 늘린 것도 그의 임기 중에 일어난 변화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올해 통화정책방향 문안을 개선하고 관련 자료 공개 범위를 확대한 것도 진일보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총재의 소통 행보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취임 초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가 이후 스스로 뒤집는 모습을 보이면서 상당한 비판에 시달렸다. 그는 "깜빡이를 일찍 켠 셈"이라며 자신의 발언 의도를 수정했지만 금리 인상 깜빡이를 켜고 전격 금리 인하를 단행한 그의 행보는 두고두고 회자될 수밖에 없었다.
▲한은 총재 '소통'에 쏟아진 관심
11월 금통위를 앞두고 이 총재의 소통에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유는 현재 통화정책 여건의 복합적인 성격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상의 여건은 무르익었다. 견조한 수출과 완만하나마 회복세를 보이는 내수가 그 근거다.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 때문에 자산가격 버블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도 기준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선제적 금리 인상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 근거로 지적되는 논리 중 하나는 최근 실업률이 하락하는 데도 물가가 반등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누구도 만족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안정을 위한 금리 인상의 위험성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다. 최근에는 달러/환율 하락도 새로운 변수로 부각됐다. 환율 하락속도가 가팔라지면 경합 국가들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 원화 강세는 가뜩이나 오르지 않는 물가의 하방압력을 가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같은 요인들은 금리 인상의 방향 자체를 되돌릴 이슈까지는 아니지만 금리 정상화의 속도를 제어하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금통위가 이달 금리를 인상한다 해도 연속 금리 인상에 대한 강력한 시그널을 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완만한 통화정책 정상화' 시그널 어떻게 줄까
이 총재 역시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기준금리 인상이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시장과 소통하면서"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11월에 기준금리가 인상될 경우 시기 자체가 통화정책 전환 속도에 대한 강한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한은 국감에서 많은 국회의원들이 이 부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고 일부 금통위원들도 10월 의사록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은이 영란은행의 선례를 쫓는다 해도 한계가 있다. 영란은행의 경우 예상보다 빨리 금리를 인상하고도 시장 충격이 전혀 없었다.
금리 인상이 충분히 사전에 고지됐고 향후 금리 인상이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총재의 언질이 시장을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영란은행의 물가보고서에서는 향후 금리 인상 속도를 연간 1회 수준으로 전망하면서 시장참가자들에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금통위의 경우 포워드 가이던스 자체가 없어 영란은행과 같은 명확한 시그널을 주기가 쉽지 않다.
이 총재가 '완만한 금리 인상'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고 해도 시장에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이 총재가 그동안 일관되게 '신중하고 점진적인'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임을 강조해 왔지만 시장참가자들은 '총재의 매파 본능'에만 주목해 온 걸 떠올려 보자. 다시 소통의 문제다.
▲소수의견이 가장 강력한 시그널..한은 총재 '방조' 가능성
이 부분에 대한 의구심을 이야기하다 한은의 한 관계자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10월 금통위로 돌아가 생각해보라고 운을 뗐다. 10월 금통위의 가장 강력한 금리 인상 시그널은 이일형 위원의 금리 인상 소수의견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이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되더라도 금리 동결 소수의견이 나온다면 그것 자체로 시장에 주는 시그널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시장에는 11월 금통위가 만장일치로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다. 기조적인 금리 인상을 계획 중인 한은 입장에서는 첫 금리조정 때 시장에 제공하는 시그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만큼, 한은 총재가 금통위 내 의견을 하나로 모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다.
금리동결 소수의견은 시장에 혼란스러운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금통위원들 역시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는 논리도 작용한다.
하지만 한은 집행부가 그런 혼란을 원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금통위원들이 일렬종대로 늘어 서 인상에 표를 던지는 모습만큼 확실한 시그널은 없다. 금리 동결 소수의견은 그 대오가 우리 예상만큼 그렇게 뚜렷한 것은 아니라는 시그널로 읽힐 수 있다.
한은 집행부가 당장 기준금리는 인상하되 향후 추가 인상 속도는 완만할 것이라는 명확한 시그널을 주려 한다면 고려할 수 있는 양수겸장의 한 수다.
한은 관계자는 "금통위가 향후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에 대한 시그널을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며 "한은 총재가 굳이 만장일치를 추진하지 않는 게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수의견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한은이 연속해서 금리 인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그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통위원들은 각자의 주관에 따라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만큼 한은 집행부의 의중과 소수의견 가능성을 연계시키는 것은 과도한 추측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금통위 내에서 한은 총재의 비중은 분명히 한 명의 위원 이상인 것이 사실이다.
이 총재가 만장일치 금리 인상 의결을 위한 노력을 시장의 예상만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30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된다면 금리동결 소수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편집 유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