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은주 기자 = 5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차(茶) 문화에서 전통 찻집인 차관(茶館)이야말로 차 문화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중국 서진(265-316)과 동진(317-419) 시기에 차관이 존재했다는 역사 기록도 있다. 광활한 땅을 가진 중국은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의 차관이 생겨났으며, 북방보다는 특히 남방에서 차관의 문화가 꽃을 피웠다.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없어진 차관은 청말 중화민국 초기 중국인에게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현대의 호텔처럼 교류와 회합의 장소인 것은 물론이고 연극을 보거나 목욕으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복합적 문화 비즈니스 공간이었다.
◆ 북방 지역
베이징(北京)의 차관은 17~18세기 극장(戲院)이 등장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장소에 불과했다. 당시 극장은 공연을 관람하면서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서 차관의 역할을 겸했기 때문이다.
베이징(北京)의 차관은 17~18세기 극장(戲院)이 생겨나면서 등장하기시작했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 장소에 머물렀다. [사진=바이두] |
◆ 남방 지역
차관은 북방보다는 남방 지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몽량록'이나 '유림외사' 등 중국 고대 서적에서도 주로 남방 찻집이 언급되어 있을 정도다. 허만쯔(何滿子), 장헌수이(張恨水) 등 현대 작가들도 차관을 추억할 때 남방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한다.
먼저 광둥(廣東)의 차관은 복층 형태의 찻집으로 발달했다. 일반 평민이 아닌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중산계층이 주요 고객층이었다. 보통 4~5층 높이의 화려한 건물에 탁자 의자부터 다도기(茶陶器)까지 모두 고급이었다. 비싼 가격 탓에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부를 축적한 이들만이 차관을 일상적 만남이나 비즈니스의 장소로 활용하였다.
복층 형태의 차관 [사진=바이두] |
개방적인 도시 상하이(上海)는 여성들의 차관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대부분의 차관이 남성들의 전유 공간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1870년대 들어 차관은 여성들의 만남의 장소로, 1880년대에는 상류층 여성을 제외한 중·하류층 여성들이 남성과 만남을 갖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앞서 광둥이나 상하이의 화려한 차관과는 다르게 쓰촨(四川)성 청두의 차관은 어느 도시보다도 서민의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일상적 공간이었다. 작가 허만쯔는 일찍이 “다른 도시에서는 화려한 외관에 눌려 차관에 들어갈 엄두를 못 냈다면, 청두 차관은 그럴 걱정이 없었다. 계층이 다른 이들이 한 공간에 섞여 어울려도 이질감이라곤 전혀 없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청두의 차관이 비교적 서민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은 데에는 지리적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청두는 대표적인 차 재배지이지만, 교통이 낙후한 관계로 생산된 차는 도시 내부에서 모두 소비해야 했다. 이로 인해 차 가격이 비교적 저렴해 서민들도 쉽게 차관에서 차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eunjoo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