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르노그룹이 일본 닛산자동차에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르노·닛산·미쓰비시 3사 연합)를 이끌던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일본 검찰에 체포된 뒤 축출되자 그 자리에 르노 측 인사를 앉히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르노가 1999년 파산 위기에 몰린 닛산 지분을 인수하면서 시작된 협력관계가 중대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다. 닛산은 곤 전 회장이 유가증권보고서에 보수를 축소 기재한 혐의(금융상품거래법 위반)로 체포되자 일본인 경영자를 후임으로 선임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티에리 볼레로 르노 최고경영자(CEO) 대행이 지난 14일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 겸 CEO에게 서한을 보내 최대한 빨리 임시 주총을 소집할 것을 촉구했다고 17일 보도했다. 볼레로 대행은 서한에서 “검찰이 곤 전 회장과 닛산을 기소하면서 닛산의 최대주주인 르노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안정에 중대한 위험이 초래됐다”며 “주총이 이 문제를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논의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곤 전 회장의 후임 선임과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닛산은 검찰이 곤 전 회장을 체포한 지 사흘 만인 지난달 22일 이사회를 열고 그를 해임했다. 이어 새 회장 선임에 들어가는 등 ‘포스트 곤’ 체제 재편을 서두르고 있다.
닛산은 또 르노와의 지분 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르노가 닛산 지분 43.4%를 보유한 반면 닛산이 가진 르노 지분은 15%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의결권이 없어 불평등한 관계라는 것이 닛산의 불만이다.
르노의 임시 주총 소집 요구는 이 같은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르노가 닛산의 최대 주주인 만큼 차기 회장 논의를 주총으로 가져가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WSJ는 “르노는 주총에서 르노 측 인사를 곤 전 회장 후임으로 선임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르노는 과거 닛산 지분을 인수하면서 맺은 기본합의서를 근거로 회장 선임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기본합의서는 “르노가 닛산 최고운영책임자(COO) 이상의 고위 임원을 선임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닛산은 르노가 임명한 곤 전 회장이 비리 혐의로 해임된 만큼 차기 회장은 르노 측 인사가 맡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지속된 르노와 닛산의 제휴 관계는 최대 고비를 맞았다. WSJ는 “르노와 닛산은 대외적으로는 협력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닛산은 르노의 주총 소집 요구에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사이카와 사장은 이날 이사회 후 기자회견에서 “지배구조개선특별위원회를 신설해 내년 3월까지 제언을 받기로 했다”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당분간 주총을 열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이사회는 곤 전 회장 후임에 대해서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이카와 사장은 자신이 회장을 겸임하는 방안에 대해 “당연히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닛산 이사회, 곤 전 회장 후임 결정 보류…계속 협의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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