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1월7일 오전 11시47분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채권금리가 오르면서 아직까지 ‘제로금리’에 가까운 엔화 채권이 한국 기업들의 새로운 자금 조달처로 떠오르고 있다. 수출입은행, 현대캐피탈, 산업은행 등 외국 기업이 일본에서 발행하는 엔화 표시 채권인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하는 한국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KT가 2년 만기 사무라이본드 200억엔(약 2000억원)어치를 발행하기 위해 이날 벌인 수요예측(사전 청약)에 모집액의 두 배가 넘는 매수주문이 몰렸다.
이 회사는 넉넉한 투자 수요가 모이자 채권 발행금액을 300억엔(약 3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다이와증권이 대표주관을 맡았다. 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낮은 금리로 주문을 낸 덕분에 KT는 연 0.3%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게 됐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KT의 신용등급을 10개 투자적격등급 중 여섯 번째로 높은 ‘A(안정적)’로 매기고 있다. 지난해 9월 ‘A-’에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KT는 한국 민간기업 중 최근 글로벌 신용등급이 오른 몇 안 되는 곳이다.
이 회사의 안정적인 수익 구조와 재무 상태가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KT는 과점 체제인 국내 통신시장에서 꾸준히 수익을 내며 최근 3년간 연 22조원대 매출과 1조원대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다. 올해 1~3분기 누적 매출은 17조4656억원, 영입이익은 1조165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9월 말 기준 순차입금(총 차입금-현금성 자산)은 3조6521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조원가량 감소했다.
올해 북한을 둘러싼 긴장이 완화된 것도 투자 수요를 모으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한국 기업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민감한 편인 일본 기관들이 남북한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한 비핵화가 본격 논의되자 한국 우량채권의 안전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채권시장에선 금리 상승기에 엔화 채권이 기업들의 또 다른 자금 조달 수단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작년에는 한 곳도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하지 않았지만 올해엔 수출입은행(6월) KT(7월) 현대캐피탈(8월) 산업은행(9월) 등 4개 기업이 총 2120억엔어치를 찍었고, 이번에 KT가 다시 발행에 나서고 있다. KT는 한 해 두 차례 이상 사무라이본드를 찍는 최초의 한국 기업이 된다.
기업들이 하나둘 엔화 조달 카드를 꺼내는 것은 빠르게 뛰고 있는 달러화 채권에 비해 엔화 채권은 안정적으로 0%대 금리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올초 연 1.9%대였던 미국 2년 만기 국채금리는 이달 6일 2.93%까지 뛰었다. 반면 일본 국채금리는 2년물이 연 -0.13%, 10년물은 연 0.13%에 불과할 정도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달러화 채권금리의 변동성이 커져 KT처럼 전략적으로 사무라이본드 발행을 검토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현지 기관들의 반응도 우호적이기 때문에 저렴한 비용으로 자금 조달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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