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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에 투자금 5조가 꽂힐 때 생길 일들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0- 12- 30- 오후 05:00
© Reuters.  '배달의민족'에 투자금 5조가 꽂힐 때 생길 일들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사진=연합뉴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이사회 의장이 배달의민족이란 배달앱을 창업한 해는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10년이다. 지극히 평범했던 가구 회사 디자이너이던 그는 서울 도심의 번잡한 거리를 배회하다가 발 길에 차이는 무수한 식당 전단지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미국 1위 배달 플랫폼인 도어대시보다, 중국의 음식 배달 시장을 평정하고 있는 메이투안 디엔핑보다 수 년 앞서 ‘온라인 푸드’ 시장을 개척했다.

아이디어의 시초성이란 관점에서 흔희 회자되곤 하는 플랫폼은 싸이월드다. 지금은 존재 자체가 없어진 이 선구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창업자는 전에 없던 혁신을 이루고도 한국이라는 변방의 한계를 넘지 못해 페이스북의 마크 저크버그가 만든 ‘소셜네트워크’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배달의민족 역시 어쩌면 싸이월드의 운명을 따랐을런 지도 모른다. 딜리버리히어로(DH)라는 독일의 푸드 플랫폼 회사가 5조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겠다고 발표하기 전까지 말이다.

‘싸이월드 공식’을 깬 국내 또 하나의 유니콘은 쿠팡이다. 소셜커머스로 시작해 2014년 매출 3000억대 회사가 지난해 매출 7조원을 돌파했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약 3조원을 투자받음으로써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넘보는 거대 ‘디지털 커머스’ 회사로 성장 중이다. 공교롭게도 쿠팡과 배달의민족은 2010년에 세상에 나왔다.

DH의 우아한형제 인수는 토종 배달 플랫폼의 해외 시장 공략이라는 의미와 함께 국내 리테일 산업에 대한 영향이란 관점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쿠팡이 조 단위 적자를 감수하며 ‘로켓 배송’이란 전에 없던 ‘룬샷(loon shot)’으로 유통의 패러다임을 바꿔놨듯이, 배달의민족 또한 DH의 막강한 자금력과 향후 상장을 통한 자금 수혈 시나리오 하에 다양한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이다.

이미 배달의민족은 디지털 커머스 등으로 영역을 빠르게 확장 중이다. B마트가 대표적이다. 쿠팡처럼 교외에 대규모 물류시설을 짓는 대신에 B마트는 도심 혹은 도심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중소형 창고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각종 잡화를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B마트는 음식을 주문하는 이들에게 함께 배달하면 좋을 법한 물건들에서 출발한다. 식료품을 비롯해 휴지 같은 생필품, 펜이나 노트 등의 문구류가 포함된다. 이 영역은 편의점과 생활잡화의 절대 강자인 다이소가 장악하고 있는 ‘유통 영토’다.

배달의민족은 ‘푸드’를 키워드로 G마켓, 11번가와 비슷한 오픈마켓으로 진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10월에 출시한 ‘전국별미’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배달의민족은 서비스 이용약관을 개정해 ‘판매중개(5조)’를 신사업으로 추가했다. 오픈마켓이 업종 분류상 통신판매중개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커머스로의 진출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전국별미’는 전국 각지의 신선한 먹거리를 산지 직송으로 소비자와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배민의 이 같은 움직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가장 유망한 분야로 부상 중인 신선식품 배송에 거대 자금이 투입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DH의 투자금을 무기 삼아 배민이 농축수산 원물과 가공식으로 영역을 확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마트 등 대형 할인점이 주도했던 신선식품 유통 시장은 전국을 연결하는 첨단 배송 시스템과 네이버 쇼핑 등 산지 상인들이 등판할 마케팅 공간이 넓어지면서 ‘군웅할거’ 시대를 맞고 있다. 수산물만 해도 인어교주해적단, 얌테이블, 오늘의회 등 신생 스타트업들이 소비자와 산지를 직접 연결하면서 대형 할인점의 아성에 도전 중이다.

배민이 월 이용자수 1000만명 이상인 거대 ‘배달 플랫폼’을 무기로 신선식품 유통에 뛰어들 가능성은 미, 중 배달앱 강자들의 행보에서 읽을 수 있다. 메이투안 디엔핑과 도어대시는 모두 신사업 중 가장 유망한 영역으로 신선식품 배송을 꼽고 있다. 두 기업 모두 아직은 사업 초기 단계여서 이렇다할 성과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음식점 생태계를 장악한 터라 이와 연관된 신선 식품의 온라인 배송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부터 골목의 작은 식당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수많은 음식점들의 식자재 시장이 아직 디지털 플랫폼이 진출하지 않은 미개척 영역이라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기업형 급식을 제외하고 작은 식당들은 산지 집하상에서부터 이어지는 다단계의 유통 경로를 거쳐 식자재들을 구입하는데 이 분야를 O2O로 전환할 수 있다면 성장 잠재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전국 음식점 네트워크를 보유한 배민이 눈여겨볼 만한 시장이다. 배민의 진격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 지켜볼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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