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세계 반도체산업에 ‘자연재해’가 덮쳤다. 미국 한파, 일본 지진 등의 여파로 주요 반도체 공장이 잇따라 셧다운(일시 가동 중단)됐다. 멈춰선 공장엔 최근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라인이 다수 포함돼 있다. 반도체 수급난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7일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KS:005930)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이 현지 한파에 따른 전력 공급 중단으로 생산을 멈췄다. 오스틴 공장은 14㎚(나노미터, 1㎚=10억분의 1m), 28㎚ 라인 등에서 인텔, 테슬라 (NASDAQ:TSLA), 자일링스, IBM 등의 칩을 생산한다. 이는 오스틴시가 정전과 전력 부족 사태로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에 ‘공장 가동 중단’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공장은 현지시간 16일 오후 4시(한국시간 17일 오전 7시)부터 멈췄다.
정전은 반도체 공장에 작지 않은 피해를 준다. 생산라인에 있는 일부 웨이퍼를 버려야 할 수도 있다. 2018년 평택 반도체 공장이 화재로 정전돼 30분간 가동을 멈췄을 때 약 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공장 가동 중에 정전이 발생해 라인에 있던 반도체를 전량 폐기한 영향이 컸다.
이번 정전은 ‘갑작스러운 쇼크’는 아니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오스틴시의 사전 공지에 따라 준비 작업을 거쳐 가동을 멈췄다”며 “피해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한파가 장기간 지속되면 생산 차질에 따른 납품 지연과 라인 복구 비용이 발생할 전망이다.
이날 오스틴시의 요청으로 가동 중단된 공장엔 세계 1위 차 반도체 업체 NXP의 생산 시설도 포함돼 있다. NXP 오스틴 공장에선 MCU(마이크로컨트롤러), 전력반도체, 센서 등을 생산한다.
지난 13일 일본 동북부에서 발생한 지진도 차량용 반도체 수급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진 여파로 세계 3위 차량용 반도체 업체 르네사스의 나카 공장이 14일 셧다운됐다가 16일부터 웨이퍼를 다시 투입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원료인 웨이퍼를 제조하는 신에쓰의 시라카와 공장도 14일 가동을 멈추고 순차적으로 생산을 재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의 ABF 기판 전문업체 유니마이크론은 화재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만 북부 유니마이크론 공장엔 지난해 10월에 이어 이달 5일에도 불이 났다. ABF 기판은 반도체 칩과 전자기기 메인기판을 연결할 때 활용하는 부품이다. 6개월 이상 ABF 기판의 공급 차질이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ABF 기판이 필수적인 CPU(중앙처리장치), 스마트폰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를 설계·판매하는 업체들은 비상상황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힘쓰는 상황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했다”며 “타격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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