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 반(反)원전 또는 탈(脫)원전을 적극 추진한 국가들이 잇따라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원자력발전 없이 안정적인 전력을 생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일본은 올 상반기 발표한 ‘제5차 에너지 기본계획’에서 2030년 원전 비중을 종전과 같은 20∼22%로 설정했다. 후쿠시마 원전이 폐쇄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실상 원전 신·증설을 감안한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원전 비중이 75%에 달하는 프랑스에선 이 비중을 2025년까지 50%로 낮추기로 했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35년으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석탄 등 화석연료를 줄이기 위해선 원전 감축 일정을 늦출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세계 원전 발전량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미국 영국 중국 등 에너지 다소비 국가들이 잇따라 새 원전을 건설 중이거나 짓기로 해서다. 작년 세계 원전 발전량은 전년 대비 1.1% 증가한 2506TWh(테라와트시)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에선 대통령 공약에 따라 탈원전 정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작년 말 확정한 ‘재생에너지 3020 계획’에서 태양광·풍력 등 비중을 당시 7% 수준에서 2030년 20%로 높이기로 했다. 반면 원자력 비중은 30.3%에서 23.9%로 낮추고 2082년엔 원전을 완전히 없애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탈원전 추진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고 우려하고 있다. 2022년까지 운영 허가를 받아놨던 월성1호기를 가동 36년 만에 조기 폐쇄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선진국에선 안전보강 등을 거쳐 노후 원전을 60~80년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정부는 또 신규 원전 6기의 건설도 백지화했다. 토지매입 비용 등으로 이미 1000억원 이상 투입된 상태였다.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최대 40%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도 마련 중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국과 대만, 일본은 고립돼 있고 에너지 사용량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원전산업이 없는 대만까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는 마당에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한국이 이를 고수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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