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SE 입회장에서 일하는 트레이더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추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어, 아직 장기채 투자에 나서기에는 이르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 랠리 속에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사는 ‘미국 장기채 투자’에 쏠려 있었다.
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는데, 현재와 같은 고금리 상황에서 가격이 낮아진 채권을 매수하면 향후 금리가 인하될 때 채권 가격이 상승해 이자수익과 매매차익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채는 단기채에 비해 금리하락에 따른 가격 상승폭이 크고, 시세 차익을 시현할 수 있는 기한도 길다.
이에 최근 금리 인상 랠리를 마친 연준이 조만간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에 베팅하는 채권 개미들이 대거 등장했다.
아울러 앞서 불거진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증시 내 위험 회피 심리가 강해진 점도, 대표적 안전자산인 미국 장기 국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선호도를 높였다.
특히 채권 투자에 비해 최소 투자금액이 낮고, 분산투자가 가능해 접근성이 우수한 채권형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량이 크게 증가했다.
코스콤 ETF CHECK(체크)에 따르면, 23일 기준 거래량이 가장 많은 채권형 ETF 상위 20개 가운데 10개 종목이 미국 장기 국채에 투자하는 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평균 기준으로 봐도 20종목 가운데 7개 종목이 미국 장기 국채 관련 ETF였다.
특히 올해 국내 증시에서 개인 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채권형 ETF인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의 순자산 총액은 3522억원으로, 전체 ETF 784종목 중 65위를 기록했다.
이밖에 KODEX 미국채울트라30년선물(H) 2575억, ACE 미국30년국채선물레버리지(합성H) 317억, KODEX iShares 미국인플레이션국채액티브 99억, TIGER 미국채10년선물 1197억, KODEX 미국채10년선물 341억, SOL 미국30년국채액티브(H) 68억 등도 순자산 총액 상위권을 차지했다.
사진=ETF CHECK 화면 캡쳐.
흔들리는 미국 금리 ‘고점론’
다만 최근 시장에서 ‘미국 장기 국채 금리 고점론’이 힘을 잃어가면서, 채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 19일 기준(현지시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5.001%까지 치솟으며, 2007년 7월 이후 15년 3개월만에 처음 5%를 넘어섰다.
이렇게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할 경우,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장기채 ETF의 가격 하락으로 인한 투자 손실도 불가피해진다. 실제 최근 한달 간 ACE 미국30년국채선물레버리지(합성 H)의 수익률은 -18.84%, KODEX미국채울트라30년선물(H)의 수익률은 -9.57%,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은 –8.53%으로 모두 하락한 반면, 장기채권에 역베팅하는 KBSTAR 미국장기국채선물인버스2X(합성 H)의 수익률은 16.78%를 기록했다.
이에 일부 주식투자 카페에는 “미국 국채 금리가 고점이라고 생각해서 샀는데 채권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당분간 미국 국채 ETF는 추가매수를 멈추고 타이밍을 봐야 할 것 같다”는 등의 글이 대거 올라오고 있다.
물론 연준이 연내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 상승 현상은 통화정책에 대한 연준의 발언보다, 미국 재정 부실 우려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에 주목해야 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현재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1조6950억달러(약 2290조원)로, 2023회계연도 국내총생산(GDP)의 6.3%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3% 늘어난 규모이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1년 2조7800억달러 이후 가장 큰 수준이다. 미 언론에서는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내년 2조 달러를 다시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두 국가에 1000억 달러 전쟁 지원금을 지출할 것을 결정하면서, 재정 위험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지출 수요는 내년 11월 예정된 미국 대선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이처럼 재정 적자가 가중될 경우, 미국 정부는 국채 발행을 통한 빚으로 예산 지출을 감당해야 한다.
문제는 미국 국채의 공급은 증가하고 있는 반면, 이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줄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미국 국채 보유액 1,2위를 유지 중인 일본과 중국은 올해 1~8월 해당 국채를 꾸준히 매도해왔다.
수급 불안이 커지자, 투자자들은 미국 장기 국채에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올해 9월 미국 10년물 국채의 기간 프리미엄(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국채 수익률)은 0.158%로, 전월(-0.511%) 대비 플러스 전환했다. 10년물 미국 국채 기간 프리미엄의 플러스 전환은 지난 2021년 4월(0.160%) 이후 2년만에 처음이다.
채현기 흥국증권 연구원은 “미국 10년물 국채가 딱히 한 가지 이유만으로 급등한 것은 아니다”라며 “연준이 경제 전망 자체를 긍정적으로 가져가고 있는 가운데, 긴축 효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는 부분들 때문에 국채의 수요가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재정적자까지 커지면서 돈을 더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재무부에서 국채 발행 규모를 늘리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생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이슈들이 겹치면서, 미 국채의 매수세가 실종되고 손절이 많이 나오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파월 의장. 사진=연합뉴스
“금리 상단 열려있다···채권 투자 신중히”
현재 월가에서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5.5%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7%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본인이 5% 금리론을 제시했을 때도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되겠느냐고 되물었다”며 “7% 금리는 가능하다”고 밝혔다.
채현기 연구원 역시 “확실히 미국 국채 금리가 고점을 확인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당장 11월 초 예정된 FOMC도 봐야 하고, 미국 3분기 GDP 성장률과 PCE물가도 모두 예상치를 상회할 가능성이 더 큰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연준의 긴축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단기물 보다는 장기물 중심으로 금리가 많이 오르는 흐름이 이어질 수는 있다”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미국 국채 금리 상단이 열려 있는 만큼, 개인 투자자들이 채권 투자에 더욱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채현기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보면 현재 수준의 금리가 내년에는 하락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다만 채권 투자는 당장 지금보다 11월 FOMC 결과와 10월 발표되는 미 경제지표 등을 확인하고 진입하는 것이 좋다. 아직도 연준은 뚜렷하게 통화정책 가이던스를 주지 못하고 있어서, 경기가 둔화되는 부분들을 더 확인한 후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분간은 오히려 금리 상단이 높아질 수 있는 부분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유가, 지정학적 리스크, FOMC 이후 파월 의장의 발언 등을 확인한 후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