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한국전자전(KES2020)을 찾은 관람객들이 LG전자가 선보인 콘셉트카에 탑승해 차량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LG전자가 글로벌 3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캐나다 마그나와 합작법인을 설립, 미래 자동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율주행과 전기차의 핵심인 파워트레인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포석이다. 시장에서는 합작회사가 애플의 차세대 전기차에 전기차 모터 등을 공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LG전자는 23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자동차부품(VS)사업본부 내 그린사업 일부를 물적분할해 마그나와의 합작법인인 LG마그나e파워트레인(가칭)을 설립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투자금액은 두 회사를 합쳐 9억2500만달러(약 1조240억원)다. 합작회사는 인천과 중국 난징에서 전기차용 모터와 전기차 인버터, 전기주행 시스템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물적분할과 합작법인 설립이 승인되면 7월께 합작법인이 공식 출범한다. 관련 사업 분야 임직원 1000여 명이 합작법인으로 이동한다.
LG전자는 이로써 자동차 전장(전자장비) 사업에서 전 분야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게 된다. 전기차 파워트레인은 신설되는 합작법인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VS본부가 맡는다. 차량용 램프 사업은 2018년 8월 인수한 오스트리아 기업 ZKW가 전담한다. LG전자 관계자는 “마그나의 자동차 부품 기술력에 LG전자의 대량생산 노하우를 결합하는 것이 합작법인의 목표”라며 “마그나를 비롯한 다양한 고객사의 신규 주문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LG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 글로벌 1위 업체다.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도 차량용 디스플레이와 전장부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LG전자 주가는 가격제한폭(29.61%)까지 치솟은 11만9500원에 거래를 마치며 2년7개월 만에 10만원 위로 올라섰다. (주)LG와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등 계열사 주식도 줄줄이 급등했다.
"배터리 이어 파워트레인도 1위로"…LG, 전기車 부품 공략 '가속'
LG전자, 마그나와 손잡고 전장사업 확대 나서전장(자동차 전자장비) 사업은 LG전자로선 ‘아픈 손가락’ 중 하나였다. LG전자가 전장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13년이다. 자동차 부품 설계 엔지니어링회사인 V-ENS를 인수한 뒤 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VS 사업본부를 설립했지만 실적은 신통찮았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계륵’ 아니냐는 취급까지 받았다. LG 전장사업의 마지막 퍼즐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 사업본부, TV를 맡고 있는 HE 사업본부 등이 ‘깜짝 실적’을 냈던 지난 3분기에도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VS 사업본부는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매출은 1조6554억원으로 적지 않았지만 영업손실이 662억원에 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조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업계에선 ‘전장=LG전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캐나다 마그나인터내셔널과의 파워트레인 합작법인 설립은 LG전자의 고민을 날려버릴 수 있는 ‘묘수’로 평가된다. 세계 3위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마그나를 고객사로 끌어들일 수 있어서다. 마그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완성차 업체에도 LG 제품을 판매할 기회가 생긴다. 자동차 부품 분야의 업력 부족에 따른 기술 공백을 메우는 데도 보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합작법인의 주도권은 LG전자가 쥐게 된다. LG전자가 신설법인 지분의 51%, 마그나가 49%를 보유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LG전자의 전장사업은 수주잔액이 60조원에 달할 만큼 규모를 갖췄지만 짧은 업력 등으로 고객사들과의 협상력 등에 한계가 있었다”며 “마그나와의 결합으로 신생 업체의 약점을 상당 부분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그나도 LG전자와의 합작으로 얻을 게 많다. LG전자는 가전 분야에서 쌓은 대량생산과 공급망 관리 노하우가 상당하다. 발 빠르게 ‘규모의 경제’를 갖출 수 있는 노하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LG 계열사들의 탄탄한 전기차 사업 포트폴리오도 마그나가 LG전자를 파트너로 점찍은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 글로벌 1위 업체다. LG디스플레이도 벤츠, BMW 등에 차량용 POLED(플라스틱 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를 공급 중이다. LG이노텍 역시 차량용 LED 램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량생산체제 조기 구축이 목표마그나와의 전기차 파워트레인 합작법인이 당면한 선결과제는 대량생산체제의 조기 구축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세계 친환경 자동차 시장은 올해 1330만 대에서 2025년 5660만 대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전기차 파워트레인 시장에선 이렇다 할 선두주자가 없다. 주요 자동차 업체가 개별적으로 부품을 주문해 파워트레인을 제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해 제조단가를 선제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면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해온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기회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최근 자사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된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바이두 역시 직접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를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 (NASDAQ:AAPL), 바이두 같은 업체들은 이제부터 부품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며 “마그나로서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마그나가 애플의 낙점을 받으며 ‘자율주행차 시장의 폭스콘’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우디, BMW 등의 주문을 받아 소형 자동차를 생산할 역량을 갖췄다는 이유에서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새로 설립되는 합작법인도 애플의 공급망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LG그룹이 합작법인에 그룹의 자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을 것이란 분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전기차 사업에 대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사진)의 애착이 상당하다는 이유에서다. 구 회장은 2019년 3월 취임 후 첫 주주총회에서 “전자와 화학, 통신을 3대 축으로 LG의 미래를 준비하겠다”며 “전기차 전지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송형석/이수빈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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