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푸르베가 디자인한 비트라의 ‘스탠더드 체어’
이제 막 디자인 가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이 어딜 가야 가장 많은 오리지널 디자인을 만날 수 있을지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스위스 브랜드인 비트라 매장을 추천한다. 비트라는 스위스 바젤에서 숍피팅(상점의 내외부를 장식하는 일)을 담당하던 빌리 펠바움이 1950년 설립했다. 지금까지 출시한 500여 개 가구 중 다수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의 영구 소장품으로 등록됐다.
현대 디자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구 제조회사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브랜드지만 놀랍게도 비트라에는 소속 가구 디자이너가 없다. 비트라는 ‘훌륭한 디자이너와 협업해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비트라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건 빌리 펠바움이 미국인 디자이너 부부 찰스·레이 임스의 오리지널 디자인 판매권을 얻어 가구를 생산하면서부터다. 미국 여행 중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LCW’ 의자를 보고 매력에 빠져 수년간 협의한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 이후 조지 넬슨, 베르너 판톤, 이사무 노구치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판매권까지 사들였다.
이 브랜드는 ‘디자이너와 함께 성장할 것’을 첫 번째 정책으로 삼고 있다. 창립 후 지금껏 비트라와 협업한 디자이너는 38명이다.
비트라의 디자인 철학을 가장 잘 반영한 가구는 1934년에 장 푸르베가 디자인한 ‘스탠더드 체어’다. ‘표준 의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지나칠 정도로 평범하고, 튼튼하며 실용적이다. 의자 뒷다리 부분이 옆으로 퍼진 삼각형 모양이 특징이다. 의자에 앉았을 때 상체 하중이 의자 뒷다리에 많이 실린다는 점에 착안한 디자인이다. 이 의자는 유럽 내 학교, 전쟁 난민 등 공공 이익을 위해 대량 생산됐고, 지금도 여전히 비트라의 이름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만약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다면 독일 바일암르하인에 있는 비트라 캠퍼스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치 가구를 만들 때처럼 비트라 캠퍼스 역시 세계적 건축가들과 협업해 디자인됐다. 안도 다다오가 콘퍼런스 파빌리온을, 자하 하디드가 소방서를, 알바로 시자가 공장을, 프랑크 게리가 디자인 뮤지엄을 설계했다.
하늘길이 막혀 갈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고 싶다면 지난 5월 비트라가 공개해 화제를 모은 다큐멘터리 《의자 시대(Chair Times: A History of Seating)》 감상을 추천한다.
구선숙 월간《행복이 가득한 집》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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