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한 16일 서울 서소문동 대한항공 사옥 로비에서 직원들이 뉴스를 검색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작업은 항공업계와 투자업계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채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산업은행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된 지난 9월부터 대한항공과 함께 인수작업을 비밀리에 준비해왔다. 이동걸 산은 회장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최근 몇 달 새 수차례 만나 인수협의를 진행했다. 한진칼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도 정부와 한진그룹 간 의견을 조율하며 협상에 힘을 보탰다. 철통보안 유지한 산은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16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가 끝난 뒤 열린 온라인 브리핑에서 “지난 9월 HDC현산과의 매각 협상이 최종 결렬된 후 한진그룹에 의사를 타진하면서 인수작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부행장은 한진 외에도 5대 그룹에 인수의사를 물어봤다고 했다. 구체적인 그룹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자산 기준으로 5대 그룹인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를 언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은은 이 중에서도 SK에 가장 적극적으로 매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지난해 9월 아시아나항공 공개 입찰 이전에도 SK에 인수를 적극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SK는 항공업에는 진출 의사가 없다는 뜻을 강력하게 표시했다는 것이 채권단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다른 그룹들도 재무상의 어려움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을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산은은 항공업을 운영하고 있는 한 그룹에도 인수 의사를 타진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이 역시 그룹명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국내 최대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을 운영하고 있는 애경그룹으로 추정된다. 최 부행장은 “위기극복과 경쟁력 개선을 위한 국내 항공산업 재편 방향에 대해 한진그룹과 뜻을 같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수 작업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한 채 비밀리에 이뤄졌다. 성주영 산은 수석부행장과 기업구조조정실 일부 간부들만 경기 하남의 산은 연수원에 긴급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인수작업을 지휘했다. 간부들은 보안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서울 여의도 본사에는 한 달 넘게 출근하지 않았다. 대한항공에서도 경영전략본부 등 일부 고위 간부들만 인수작업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채권단의 설명이다.
인수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른 이달 초 산은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에 구체적인 인수계획을 보고했다. 금융위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해 청와대에도 이달 초 사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후에서 중재한 김석동 김석동 前 금융위원장
이 회장은 인수작업이 시작된 후 조 회장과도 수차례 만났다는 것이 채권단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9월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최종 무산되기 전부터 ‘플랜B’(대안)로 이번 인수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평소 아시아나항공이 채권단 체제로 편입돼 산은이 경영을 맡는 것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았다. 위기에 빠진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선 항공업 운영 경험이 풍부한 한진그룹밖에는 대안이 없었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대신 조 회장과 한진그룹 경영권을 다투고 있는 강성부 KCGI 대표의 잇단 면담 요청은 거절했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막후에서 이번 인수작업을 중재했다. 김 전 위원장은 금융위와 기재부 간부들이 존경하는 선배로 꼽을 정도로 신망이 두텁다. 그는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김용범 기재부 1차관 등을 잇따라 만나 이번 인수 작업의 당위성을 수차례 역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이 양측의 메신저 역할을 맡아 물밑 협상을 조율한 것으로 안다”며 “올해 초 김 전 위원장을 한진칼 이사회 의장으로 영입한 조원태 회장의 승부수가 빛을 본 셈”이라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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