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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공정위원회와 전투를 벌일 모양이다. 공정위가 6일 네이버 쇼핑이 검색 결과를 조작해 자사 오픈
마켓(스마트스토어) 상품을 상위에 올리도록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했다며 26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하자 이에 불복, 소송전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처벌 수위가 그리 강하지 않은 데도 네이버는 왜 사활을 걸고 규제 기관에 달려드는 것일까.
우선 이번 공정위의 처벌 수위가 어느 정도인 지부터 감을 잡는 게 중요하다. 네이버 쇼핑의 가격비교가 다른 곳엔 없는 비즈니스 모델이고, 이에 대한 공정위의 판결도 처음이라 동일 비교는 불가능하다. 가장 최근에 나온 공정위 판결로는 SPC그룹에 대해 6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가 있다. 공정위는 SPC 그룹이 제빵 원료에 대해 ‘통행세’ 거래를 한 혐의로 허영인 회장 등 전현직 임원 3명 등을 검찰 고발하고, 그룹에는 과징금 647억원을 부과했다. 210개 품목의 원재료와 완제품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역할이 없는 SPC삼립을 끼워넣어 평균 9%의 이윤을 남기도록 한 게 불공정 행위로 지적받았다.
네이버 쇼핑은 SPC에 비하면 처벌 수위가 낮은 편이다. 법인에 대한 고소·고발이 없는 데다 과징금 규모 역시 절반도 안된다. 물론 자사 몰아주기와 검색 알고리즘 조작의 불공정성을 과징금으로 어떻게 환가(換價)할 수 있을 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공정위가 네이버에 내린 시정명령도 명확치 않다. 결과 보고 의무도 명시되지 않았고, 문제가 된 행위를 금지하는 명령도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2017년 6월 EU법원은 구글 쇼핑에 대해 24억 유로(약 3조원)의 과징금을 때렸다. 구글에서 키워드 검색을 하면 구글 쇼핑의 상품을 압도적으로 상위에 노출되도록 조작했다는 게 이유였다. 네이버 쇼핑의 사례와 큰 틀에선 비슷한 측면이 있다. 구글 역시 EU법원에 강하게 항의해 현재 심리가 중단된 상태며, 구글은 위법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구글 쇼핑을 사내 독립적인 사업부로 운영하고 있다. 검색 시장의 독점력이 쇼핑 사업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혐의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국내외 사례를 감안할 때 네이버가 이번 판결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 자료를 내며, 공정위와 소송전을 불사하겠다고 선언한 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게다가 이번 공정위 전원회의 및 최종 판결 과정에서 네이버는 결정적인 약점을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발표 자료 말미엔 네이버 직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이 등장한다. 공정위가 네이버를 꼼짝 못하게 했다는 이른바 ‘스모킹건’이다.
대화 내용은 이렇다. “쇼핑검색에서 diversification 로직을 조금 변경하려 합니다. 현재 soft goods 검색결과에 스토어팜도배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대략 20%를 넘지 않게 하는 cut-off 로직이들어가 있는데요. (첫페이지40개 기준 8개)이 비율을 얼만큼&어느 정도 속도로 조정해 갈 것인가? 사업적 판단을 하면 그에 맞게 테스트를 진행해볼 예정이고, 외부이슈를 hedge하면서 갈 숫자를 찍어야 하는데요.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답변자는 이렇게 말했다. “적당한 선이라는게 결정하기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염려되는 부분이 제휴몰에서의 이슈제기일텐데요, 혹시 5% 씩 늘려가면서 외부 반응을 살펴볼 순 없나요? 25, 30, 35% 이런 식으로 일정기간이 지날때마다 조금씩 늘려가면서 외부 반응을 보면 적정선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런 방법은 어렵나요?”
공정위 설명에 따르면 네이버페이 서비스 출시(2015년6월)를 앞두고 네이버페이 담당 임원이 네이버 검색에서 해당 사업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주고 받은 메일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네이버는 자사 오픈마켓 상품의 노출을 더욱 늘리기 위해 자사 오픈마켓 상품 노출 제한(cut-off) 개수를 8개에서 10개로 완화했다. 당초 공정위 전원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네이버의 ‘소비자 편의주의’에 상당히 동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페이라는 편리한 결제 수단을 개발한 데다 스마트스토어 상품의 상위 노출은 수많은 1인 창업자나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공정위가 네이버 직원 간 이메일을 공개하자 분위기가 바꼈다는 후문이다. 결국 ‘267억원의 과징금과 의무없는 시정명령’은 네이버 쇼핑의 혁신을 감안하면서 동시에 경쟁사에 대한 불공정 행위를 눈감을 수 없었던 공정위의 고육지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공정위의 이 같은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네이버가 과징금 부과 발표 직후 강공으로 선회한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큰 이슈는 ‘알고리즘 조작’에 대한 논란이다. 네이버는 공정위가 “네이버에 유리한 알고리즘 조정만 뽑아내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라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알고리즘에 직원이 손을 댔으며, 변경 사항을 경쟁사(네이버 쇼핑에 입점해 있는 옥션, G마켓, 11번가 등)에 알려주지 않아 결과적으로 불공정 경쟁이 됐다고 설명했다.
네이버가 알고리즘 조작을 순순히 인정할 경우 이후 발생할 후폭풍의 위력은 가늠하기 어렵다. 공정위는 지난달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을 입법 예고하면서 판매자가 지출하는 재화(광고비, 수수료)가 상품 노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공정위는 네이버, 11번가, G마켓 등 오픈마켓의 상품 노출 알고리즘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했으나 업계의 강한 반발을 의식해 알고리즘 공개는 뺀 것으로 알려졌다. 플랫폼공정화법은 네이버 쇼핑 등 사업자와 입점 상인들 간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으로 네이버의 스마트스토어 ‘부당 지원 혐의’와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네이버가 이번에 ‘알고리즘 조작’을 인정할 경우 플랫폼공정화법 시행령에서 알고리즘 공개가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뉴스 노출의 알고리즘으로까지 논쟁의 불이 번질 수 있다는 점도 네이버의 고민이다.
네이버가 ‘쇼핑 사수’에 사활을 거는 또 다른 이유는 쇼핑 데이터 확보가 네이버의 미래 먹거리 중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선 네이버의 본업이 무엇인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네이버는 본질적으로 광고 플랫폼 회사다. 여타 오픈마켓이나 유통업체들과는 업(業)의 목표가 다르다. G마켓, 옥션, 11번가 등 오픈마켓은 입점업체들이 내는 수수료가 매출의 근간이다. 입점 상인들은 폼목에 따라 거래 금액의 10~15%를 수수료로 낸다. 이에 비해 네이버의 스마트스토어는 수수료를 파격적으로 낮춘 대신에 다양한 광고 마케팅 수단을 상인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익을 추구한다.
네이버가 생존하기 위한 1순위 원칙은 독보적인 플랫폼 사업자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야 광고가 들어온다. 스마트스토어와 경쟁 관계인 오픈마켓 사업자들이 네이버를 ‘디지털 쇼핑의 영주’라고 비난하고, 스스로를 ‘쇼핑 콘텐츠를 대주는 소작농’이라고 비하하면서도 네이버 가격비교에 수수료(2%)를 내고 들어가는 건 네이버가 국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는 압도적인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네이버를 외면하고 다음 등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순간, 네이버는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네이버는 플랫폼 활성화를 위해 사업 초기엔 뉴스 콘텐츠에 의존했다. 이해진 의장은 당시 언론사 출신을 대표로 앉히고, 임원진에도 언론인들을 대거 포진시켰다. 서비스 운영에 특화된 한성숙 대표가 네이버의 세 번째 CEO(최고경영책임자)라는 건 네이버의 방점이 쇼핑 등 서비스 콘텐츠로 옮겨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네이버라는 큰 울타리 안에 쇼핑과 관련한 모든 콘텐츠와 정보를 담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네이버라는 거대 플랫폼을 떠날 생각을 못할 것이라는 게 네이버의 셈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네이버가 경쟁사나 다른 유통채널의 콘텐츠에만 의존하는 건 리스크가 크다. 실제로 옥션, G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와 11번가, 쿠팡 등은 품목별로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네이버 쇼핑에 상품을 올린다. 네이버가 스마트스토어라는 자체 오픈마켓을 활성화하는데 사활을 거는 이유다.
쇼핑 콘텐츠는 네이버의 또 다른 미래 성장 동력인 금융 진출과도 연관돼 있다. 네이버는 이미 네이버페이라는 간편 결제 수단을 갖고 있다. 신용카드사의 독점 영역이었던 결제 정보를 네이버가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다. 스마트스토어에 등록된 수억개의 상품과 이에 대한 수많은 거래 정보는 오직 네이버만 가질 수 있는 데이터다. 네이버가 갖지 못한 정보는 딱 하나다. 은행 등 금융권이 보유한 고객의 금융 데이터다. 네이버는 정부가 추진 중인 마이데이터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마지막 퍼즐’까지 완성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네이버가 공정위의 시정 명령을 어느 정도까지 지킬 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네이버는 일단 행정 소송의 결과를 지켜보며 움직일 것이다. 공정위의 칼날에 제동이 걸릴 지, 네이버의 진군에 브레이크가 걸릴 지 이래저래 양측 소송전에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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