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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A양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굿즈(캐릭터 상품)’를 사고 싶었지만 돈이 모자랐다. A양은 SNS로 접한 ‘대리입금’을 활용해 여러 명으로부터 2만~10만원씩 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돈을 제때 갚지 못하게 되자 또 다른 사람들에게서 대리입금을 받아 상환했다. 돌려막기에 빠진 A양은 최종적으로 400만원을 빚 갚는 데 써야 했다.
콘서트 티켓이나 게임 비용 등이 필요한 청소년을 유인해 소액을 단기로 빌려준 뒤 고액 이자를 챙기는 대리입금이 성행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 5월까지 접수된 대리입금 광고 관련 제보는 2100건에 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질적인 피해 신고는 2건에 불과했지만, 이는 청소년들이 대리입금을 받은 사실을 주위에 알리려 하지 않아 신고가 미미했기 때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리입금 업자들은 SNS 등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접근해 1만~30만원 내외의 소액을 2~7일간 단기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다. 친근한 지인 간의 거래처럼 보이게 하려고 ‘이자’라는 말 대신 ‘수고비’나 ‘사례비’라는 용어를 쓴다. 또 ‘연체료’라는 단어 대신 ‘지각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통상 업자들은 수고비로 대출금의 20~50%를 요구하고, 약정기간을 넘기면 시간당 1000~1만원의 지각비를 부과한다. 빌리는 돈이 소액이라 체감하기 어려울 뿐 실질적으로는 연 1000% 이상의 ‘고금리 소액 사채’와 똑같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다. 현재 법정최고이자는 연 24%로, 이보다 높은 이자를 받으면 불법이다.
이들 업자는 신분 확인을 빌미로 가족이나 친구의 연락처 등을 요구하고 있어 개인정보 유출, 불법 추심 등 2차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용돈벌이로 대리입금을 하는 청소년들도 있어 고리대금 형태로 친구의 돈을 갈취하는 진화된 형태의 학교폭력으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금융당국이 파악한 대리입금 피해 사례를 보면, 청소년 B군은 3일 동안 10만원을 빌리고 14만원을 상환했는데도 36시간 연체에 대한 지각비 5만원(시간당 1500원)을 내라는 협박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우연히 도박 사이트를 접한 고등학생 C군은 도박자금을 1주일에 50% 수고비(연이율 2600%)를 지급하는 대리입금을 통해 마련하다가 4년 만에 도박빚이 3700만원으로 불어났다.
당국은 대리입금 거래 피해 접수 시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등 유관기관과 공조하고, 피해 예방을 위한 금융교육도 강화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대리입금은 소액 고금리 사채이므로 청소년들은 급하게 돈이 필요하더라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른 사람에게 대리입금을 해 주는 행위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SNS에 광고를 올리고 여러 명에게 반복적으로 대리입금을 한다면 대부업법·이자제한법 위반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금감원은 “대리입금을 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일부러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사기 행위도 빈번하다”며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용돈벌이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대리입금을 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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