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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몰고와 억단위로 사는 '차떼기 銀투자'…Silver 사이클 왔다

입력: 2019- 07- 31- 오전 02:50
© Reuters.

은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개인 자산가들의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30일 서울 종로에 있는 한 귀금속 전문매장에서 직원이 실버바(은괴)를 살펴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st@hankyung.com

지난달 초 서울의 한 대형 금은방에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트럭에서 내린 사람은 “시중에서 금을 구경할 수가 없으니 은이라도 사야겠다”며 1.2t(당시 약 8억원어치)의 실버바(은괴)를 그 자리에서 실어갔다. 며칠 뒤에는 또 다른 사람이 와서 1.4t의 실버바를 사갔다. 올 들어 골드바 등 금(金)상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던 국내 자산가들이 은(銀)제품까지 쓸어담고 있는 것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최대 민간 금속거래업체인 한국금거래소의 올 상반기 은 판매량은 17.9t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거래량(1t)보다 18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국민·우리은행의 실버바 판매량도 덩달아 급증했다. 지난해 상반기 3870만원어치에서 올 상반기 6억9800만원어치로 뛰어올랐다. 한국금거래소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확산되면서 자산가들의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며 “올해 국내 은 판매량은 2011년 이후 최고치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 투자가 늘고 있는 것은 시세 반등에 대한 기대가 작용하고 있지만 국내 골드바 등 금제품이 수요 폭주를 이기지 못해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국내 은 가격은 국제 시세에 비해 10% 이상 높게 거래되는 이상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2011년 이후 올해 4월까지 하강곡선을 그리던 국내외 은 시세는 한 달 전부터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이날 국제 은 시세는 트로이온스(31.1034g)당 16.37달러를 기록해 연중 저점(5월 28일, 14.28달러)보다 15%가량 올랐다. 국내 시세는 지난 5월 3.75g(1돈)당 2200원대에서 이날 2580원대까지 뛰어올랐다. 현재 원·달러 환율과 트로이온스 기준을 적용하면 국내 가격이 10% 이상 높다.

소외됐던 銀의 부활

금리 떨어지는 시기에 가격 올라

올해 거래량 사상 최대 될 듯

금에 이어 은까지 품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조폐공사가 인증하는 실버바 500g과 1000g짜리 제품은 이미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인증서 없는 제품에도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연일 상승하고 있다. 은은 통상 산업용 수요가 많아 지금처럼 국내외 경기가 정체·침체된 상황에선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국제 은 시세가 상승 탄력을 받고 있는 데다 국내 증권·부동산시장의 동반 침체로 은을 금의 대체투자처로 삼으려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국내 가격이 국제 가격을 추월해 오르는 것은 경기에 대한 자산가들의 불안감이 그만큼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금·은 없어서 못 판다

올 상반기 국내 은 투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배나 늘어난 것은 안전자산인 금 수요가 급증한 것과 관련성이 깊다. 미·중 무역갈등이 불거진 가운데 국내 정치권에서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자산가들 사이에 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난 것. 이 와중에 골드바가 동나면서 은으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옮겨붙었다는 것이다. 국내 한 금은방 관계자는 “은 자체가 안전자산은 아니지만 금값이 많이 오르거나 품귀현상이 생기면 은으로 수요가 몰리는 양상이 자주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개인이 t 단위로 수억원 어치나 구입 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단순히 시세차익을 노리고 사들였다고 보기엔 너무 덩어리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기자와 만난 한 자산가는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환경이 크게 불안해지면서 금과 은을 더 사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은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자산가들로부터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국제 은 시세가 L자형 곡선을 그리며 하락해왔기 때문이다. 2011년 트로이온스(31.1034g)당 40달러 선이던 은 시세는 지난해 13달러 선까지 추락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은값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한국금거래소의 지난해 상반기 은 판매량은 1t에 그쳤지만 하반기엔 7.8t으로 급증했다. 올해엔 상반기에만 18t이 거래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버바 판매량이 꾸준히 늘다가 올 5월 골드바가 자취를 감추자 갑자기 주문이 폭증했다”며 “올해 은 거래량은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전했다.

○가격 계속 오를까

전문가들은 앞으로 당분간 은 가격이 상반기보다 더 오르고 거래량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시세가 급등하긴 했지만 아직 금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는 인식이 많아서다. 여기에 미국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금·은 가격을 더 끌어올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금거래소 관계자는 “은 가격이 2011년 고점 대비 3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어서 가격 상승 여력이 아직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금값이 계속 오르는 것도 은 투자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금과 은의 교환비율(금 가격이 은의 몇 배인지 계산한 비율)은 86.2배에 달했다. 1970년 이후 평균 교환비율(57.9배)보다 크게 높아진 것이고, 10년 평균(66.5배)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통상 금 교환비율이 너무 높아지면 은값이 금값을 따라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변종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안전자산 선호로 금 가격이 강세를 보이는데 교환비율을 고려하면 은 가격이 당분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소람/강영연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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