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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법원도 우려하는 여론의 낙인 효과

입력: 2019- 06- 03- 오후 06:52
© Reuters.

이형진 인포스탁데일리 편집국장[인포스탁데일리=이형진 편집국장] 여론(輿論)은 변한다. 수많은 정치·경제·사회학자들이 단골로 쓰는 표현 중 하나다. 여론은 시대와 역사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흐름’의 산물이어서다. 변하는 시대,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희망’이자 ‘바람’이기도 하다. 여기에 각자의 욕망도 투영한다. 여론은 맹신(盲信)과 맹목(盲目)적인 성질을 동반한다. 수많은 격동의 시대를 겪어온 우리로서는 당연한 일들이고 모습들이다. 빠르고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건너오면서 여론은 발산과 분출 방법이 달라졌고 다양해졌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장치들은 보다 깊은 ‘소통’의 장을 열었다. 군집된 소통은 집단지성이 돼 분출했다. 때로는 거대한 힘으로 만들어졌고 발휘되기도 했다.여론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 쏠리면 다른 모습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 또한 우리가 겪어 왔던 사실이다. 여론은 사실이나 진실을 추구하기보다 ‘사실일 것 같다’, ‘진실 일 것 같다’는 관용적 흐름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진짜와 가짜를 판별하는 것과는 다른 것들이다. 수많은 학자들이 쏠림을 경계하는 이유다.여론쏠림에서 걱정스러운 것은 본질보다는 '변화'다. 기업에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온라인을 통해 설파되면 여론은 차가운 분노로 바뀌고 바로 기업에게 쏟아낸다. 독단적 기업의 행위나 행태를 질타하면서 다른 의문부호는 없다. 일방적 주장에 동조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은다. 혹 중립적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매도당하기 일쑤다. 온라인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수사기관의 조사에서 일방적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여론은 얼굴을 바꾼다. 피해자였던 사람은 곧이어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극단적 마녀사냥도 벌어진다. 이 역시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여론은 이처럼 얼굴을 자주 바꾸면서도 기업만큼은 냉소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사건의 중심이 기업이라면 직접 원인 제공자로 낙인을 찍는다. 최근 비판을 받고 있는 삼성의 사건에서도 이런 모습이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사건은 재판도 시작하기 전 이미 ‘사실’로 단정됐다. 호된 여론은 곧장 위험 수위를 오가는 여론으로 변했다. 잘잘못도 따지기 전에 이미 범법자가 됐고 해당 기업 직원들도 똑같은 범법자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낙인은 법원에서 우려를 보일 정도다. 법원은 지난 28일 증권선물위원회 행정처분에 대해 제재 효력정지 판결을 내렸다. 본안소송에서 판단하기도 전에 회계부정을 저지른 기업으로 낙인찍혀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것이 1심 법원의 판단이다.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은 기업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다. 통상 국내 기업은 해외기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하면서 절반씩 공동부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경영권을 가지기 위해 지분율 ‘50%+1’ 주를 확보한다. 종속회사와 관계자 설정의 근거도 지분율을 근거로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분식회계 판단은 이런 근간을 뒤바꾼 것이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바이오기업이나 해외합작 기업들은 당장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똑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여론은 한발 더 나아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향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일렬의 과정 역시 범법 행위라고 낙인 찍었다. 검찰이 나서서 20여 차례 압수수색을 하고 삼성 임원들이 구속되면서 여론은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 굴곡지지 않은 채 삼성 수뇌부를 정조준하는 중이다. 법원의 판단이나 검찰이 유죄를 확정한 것 하나 없는데도 검찰 ‘수사’는 곧장 ‘사실’로 단정된 분위기로 흐른다. 입장 표명을 자제해왔던 삼성은 급기야 “진실규명이 초기단계인데도 유죄라는 단정이 확산되고 있다”며 억울함을 토했다. 제발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지경까지 왔다. 현재 상황을 보는 관점은 저마다 다르다. 그리고 달라야 한다. 이런 관점이 올바른 여론이 되고 건강한 비판이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지금 여론은 혹독하게 보편화 하려 한다. 방향이 정해졌고 법과 원칙을 배제하고 확정적인 ‘나쁘다’는 결론에 도달하려 한다. 온전한 집단지성 대신 분노가 먼저 대변되는 집단지성으로 가려 한다. 지금 비판받아 마땅한 기업들은 차고 넘친다. 부도덕하거나 개인(최고경영자)의 욕망으로 기업의 가치를 망가뜨리는 곳도 많다. 불법을 저지른 기업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위법이 드러나면 처벌 받아야 한다.그럼에도 잣대는 대상에 따라 다르다. 사명감을 가지고 국민에게 먹거리를 제공했다며 국민기업 칭호를 받던 한 식품회사의 대표는 최근 횡령으로 재판을 받았고 징역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흔히 인터넷에서 보던 청렴한 기업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유죄판결문을 보더라도 익히 알고 있었던 도덕적 기업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여론의 쏠림 혹은 보편화가 만든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우리가 보다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형진 선임기자 magicbullet@infostoc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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