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텍 CI.
[인포스탁데일리=김문영 기자] 소방설비 업체 파라텍이 목적과 대상이 불투명한 대규모 유상증자와 CB(전환사채) 발행 계획을 밝혀 ‘묻지마 자금조달’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페이퍼컴퍼니와 자본잠식 업체, 출자 규모를 밝히지 않는 신생 조합들이 투자 주체로 있는데다 자금 사용 목적 중 신규투자 대상도 정해진 바가 없어서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파라텍은 최근 정정 공시를 통해 총 67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CB 발행 계획을 밝혔다. 유상증자로 70억원, 3·4회차 CB 발행으로 600억원을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유상증자 70억원 중 5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웰퀘스트는 자본금 10만원 짜리의 페이퍼컴퍼니로 드러났다. 또한 20억원을 납입하기로 한 휴림홀딩스는 자기자본이 5억여원에 불과하고 현재 50% 가까운 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두 곳 모두 자체 자금으로 납입능력이 없는 상태인 것. 휴림홀딩스는 휴림로봇의 최대주주이고 대표이사는 파라텍 사내이사로 올라있는 김도영씨다.
웰퀘스트의 납입능력과 사업실체 등을 확인하기 위해 등재된 사무실 주소로 방문했으나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웰퀘스트의 최대주주인 제이케이위더스가 그 곳에 위치해 있었고 웰퀘스트의 흔적은 없었다. 웰퀘스트의 대표이사는 박찬영씨로, 웰퀘스트와 제이케이위더스를 포함해 휴림그룹의 계열사 여러 곳에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자금 계획을 묻기 위해 제이케이위더스 직원에게 박 대표와의 연락을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등재된 주소에 웰퀘스트의 흔적은 없었다. 해당 장소에는 제이케이위더스가 위치해 있다.(사진=인포스탁데일리)
또한 파라텍은 600억원 CB 중 300억원의 발행 목적이 타법인 증권 취득이라 공시했지만 신규사업 투자대상은 미정이라고 밝혔다. 시가총액의 90%를 넘어서는 대규모 자금조달을 하면서도 목적과 대상의 실체가 모두 석연치 않은 모습이다.
300억원씩 CB를 인수하기로 한 주체는 둘 다 최근 설립된 신생 조합으로 어떠한 재무사항도 공시되지 않고 있다. 해당 조합들의 납입 능력과 관련해 조합의 출자금 규모에 대해 질의했지만 회사 관계자는 “밝힐 수 없다”고 대답했다.
3회차 CB 인수 예정자는 에이치파워조합으로 남재연씨가 대표로 있으며 지난 8월 19일 신설된 조합이다. 4회차 CB 인수 예정자는 제이피1호조합으로 박근호씨가 대표로 있고 지난 4월 18일 신설된 조합이다. 대금 납입은 공히 오는 11월 26일로 예정돼 있다.
600억원에 달하는 CB를 발행하지만 콜옵션(매도청구권) 조항은 빠진 채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조항만 붙었다. 콜옵션은 대체로 발행사에 유리한 옵션으로 해석된다. 콜옵션 조건이 없으면 주가가 크게 올라도 회사는 CB 발행으로 인한 차익을 누릴 수 없다.
3·4회차 CB의 전환청구기간은 내년 11월 26일부터이고 전환가는 1919원, 최저조정가는 500원이다. 이번 3·4회차 발행으로 파라텍의 잔여 CB 발행 한도는 7450억원이다. 여전히 시가총액의 10배 넘는 금액을 추가 발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총에 맞먹는 대대적인 자금조달을 하면서도 실체와 납입능력이 불투명한 페이퍼컴퍼니와 자본잠식 회사, 출자 규모조차 공개하지 않는 신생 조합 등을 내세우는 것은 조달과정의 건전성에 관해 의구심을 가질 만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파라텍의 최대주주 휴림인프라투자조합을 지배하고 있는 휴림로봇은 지난 7월 이큐셀 인수를 명목으로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진행해 597억원을 확보했고 현재 이큐셀 인수는 취소된 상태다. 이에 휴림로봇은 이 자금의 활용방안을 두고 “사업적 시너지를 구축할 수 있는 다양한 기업들을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휴림로봇은 이큐셀 인수 철회와 관련해 지난 8월 28일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이 예고됐다.
휴림그룹은 제이앤리더스를 필두로 휴림홀딩스와 휴림로봇으로 내려가며 가지를 펼치는 복잡한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 중 휴림홀딩스의 휴림로봇 지분율이 9.39%, 휴림인프라투자조합의 파라텍 지분율이 9.42%로 그룹 계열사 중 상대적으로 지배력이 약하다. 휴림인프라투자조합은 현재 40% 가량 자본잠식 상태며 대표이사는 휴림로봇 대표를 겸하고 있는 김봉관씨다.
김문영 기자 deepwatch@infostoc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