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는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우석경제관에서 열린 '한국은행-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공동 심포지엄' 폐회사를 통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 "입시경쟁, 강남 부동산 과열의 근본 원인"
이 총재는 최근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높은 가계부채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세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는 고민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금통위 결정이 현 상황에서 옳은 결정이었는지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왜 우리 사회가 높은 가계부채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늪에 빠지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도권, 특히 강남 부동산에 대한 초과 수요의 근본 원인으로 입시경쟁을 꼽았다.
이 총재는 "입시경쟁이 치열해지고 사교육이 중요해지다 보니 자녀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서울로, 그리고 강남으로, 주택 구입이 어려우면 전세라도 진입하고자 한다"며 "이후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또 다음 세대가 똑같은 목적으로 진입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고착화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행은 '지역별 균형선발제'를 제안했다. 이는 대학이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학생들을 선발하는 방식이다.
이 총재는 "지역균형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학업성과가 다른 학생보다 전혀 뒤처지지 않는 것은 이 제도가 수월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다양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제안이 정부 정책이나 법 제도 변경 없이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의 결단만으로 큰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이를 통해 대치동 학원이 전국으로 분산되고 지방 학생이 입시를 위해 서울로 이주해올 필요가 없어지는 등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의 시급성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해 날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는 격언을 인용하면서 "더 안타까운 점은 이제 우리에게 해 날 때를 기다려 구조개혁을 추진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이어 "태풍만 아니라면 날씨가 흐려도 단기 경제정책과 구조개혁을 함께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수십년간 증가해온 가계부채, 반복되는 부동산 문제, 미진한 연금 및 노동개혁 등을 볼 때 우리는 해가 날 때도 구조조정을 하기보다 손쉬운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모면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세계 최상위권 수준 가계부채가 더 증가했다간 수요부족으로 경제성장률을 낮추고 그 정도가 지나치면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높아진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국민들 간의 위화감, 나아가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구조적인 제약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통화·재정정책을 수행한다면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는 지난 20년과 같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