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장수 최고경영자(CEO)’ 최양하 한샘 회장이 31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25년간 CEO로 재직한 그는 한샘을 국내 가구업계 1위 기업으로 일궜다. 신경훈 기자 ksshin@hankyung.com
‘25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 ‘샐러리맨의 신화’ ‘가구업계 최초 매출 2조원 클럽 가입’….
최양하 한샘 회장은 유독 이름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많은 경영자다.
한샘을 국내 1위 가구 기업으로 키운 최 회장이 31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기업인은 말이 아니라 실적과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고 줄곧 강조하던 그답게 별도의 퇴임식은 열지 않을 예정이다.
7평짜리 목공소서 출발
최 회장이 1979년 ‘한샘 생산 과장’ 명함을 만들고 처음 출근한 곳은 경기 안산 수암공장이었다. 말이 공장이지 20㎡(약 7평) 크기의 목공소나 다름없었다.
입사하자마자 생산라인의 기계화 작업부터 시작했다. 수작업에 의존해선 성장에 속도가 붙을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의 목표는 ‘현대식 주방의 대중화’였다. 매일 새벽에 출근해 밤을 새워가며 공장 자동화 작업에 매달렸다. 중장비 설계업에서나 사용하던 캐드(CAD) 프로그램을 1989년 업계 최초로 도입한 것도 최 회장이었다. 모눈종이에 연필로 설계도를 그리던 관행을 깨니 공정 시간과 생산성, 오차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최 회장의 추진력과 영업력, 근면함은 금세 조창걸 명예회장의 눈에 띄었다. 입사한 지 15년 만인 1994년 대표이사 전무, 1997년 사장 자리에 올랐다.
“위기야말로 성장모멘텀”
업계에선 최 회장을 ‘승부사’라고 평가한다. “강력한 경쟁과 위기가 우리를 강하게 키운다”는 그의 평소 지론처럼, 세 번의 전사적 위기를 모두 지렛대 삼아 회사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첫 번째 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찾아왔다. 대부분 기업이 사업을 축소하고 투자를 미뤘지만 최 회장은 오히려 한샘을 부엌가구 업체에서 종합가구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경쟁사들이 각각의 가구를 개별적으로 팔 때 한샘은 ‘공간 전체’를 판매하는 전략을 세웠다. 가구 판매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린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는 중저가 브랜드 ‘ik’로 승부수를 던졌다. 대리점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관행을 깨고 동네 인테리어 업체들과 납품 계약을 맺어 유통망을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그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약 70% 증가했다. 2014년 말 스웨덴 가구 기업인 이케아가 한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도 대리점을 대형화하는 동시에 시공 서비스를 강화했다. ‘국내 가구업계가 초토화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를 뚫고 한샘은 승승장구했다.
은퇴 후 교육 사업 매진
최장수 CEO 자리를 유지한 비결에 대해 최 회장은 평소 “내 회사처럼 일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 최 회장을 조 명예회장은 전적으로 신뢰했다. 두 사람의 상반되는 성격은 오히려 ‘한샘호’를 이끌어가는 데 시너지를 냈다. 최 회장은 평소 “이상적인 조 명예회장이 꿈을 꾸면 내가 현실로 만든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소유와 경영이 철저히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를 25년이나 지킬 수 있었다.
은퇴 후 최 회장은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 사업에 매진할 예정이다. 그는 “퇴임 후에는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는 게 내 역할인 듯하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 최양하 회장은…
△1949년 서울 출생
△1968년 2월 보성고 졸업
△1973년 2월 서울대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
△1976년 6월 대우중공업 입사
△1979년 1월 한샘 입사
△1983년 1월 공장장
△1989년 1월 상무이사
△1994년 1월 전무이사(대표이사)
△1997년 1월 대표이사 사장
△2004년 6월 대표이사 부회장
△2010년 1월 대표이사 회장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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