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화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한화솔루션(009830)이 수소와 태양광에 이어 세 번째 '조커'를 꺼내 들었다. 바로 '헬스 케어'다. 한화솔루션의 헬스 케어 사업은 아직 매출액도 없는 시운영 단계지만,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배경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한화솔루션의 사업 영토 확장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동관 사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본격화를 예고한 신사업이며, 한화가 그룹 차원에서 강조하는 지속 가능 경영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오바마 케어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이미 대표적인 국내 '바이든 수혜주'로 통하는 한화솔루션의 주가가 더욱 탄력 받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더 튼튼해지기 위해
한화솔루션은 지난 10일 올해 3분기 경영 실적을 발표하면서, 고순도 크레졸 생산에 나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약 1200억원을 투자해 연산 3만톤 규모의 고순도 크레졸 생산 공장을 전남 여수에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오는 2023년 7월 상업 가동이 목표다. 해당 공장이 완공되면, 한화솔루션은 독일 랑세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솔에 이어 세계 3위 크레졸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유기 화합물인 크레졸은 고부가 제품인 동시에 활용 폭도 넓은 원료라, 기초 화학 소재의 '팔방미인'으로 꼽힌다. 제조 방식에 따라 합성 비타민 등 뉴트리션(식품 영양) 분야 제품부터 멘솔 따위 합성 향료, 산화 방지제 등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한화솔루션은 고순도 크레졸 사업의 전망을 의심할 여지 없이 밝은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한화솔루션에 따르면 세계 크레졸 수요는 지난해 기준 약 19만톤으로 8000억원 규모에 달하며, 매년 4%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한상윤 한화솔루션 전략 부문 부장은 3분기 콘퍼런스 콜에서 "고순도 크레졸 상업 생산이 안정화되면 (크레졸 사업의) 연간 매출은 약 1000억원, 영업 이익률은 두 자릿수 이상으로 시현될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다.
한화솔루션은 케미칼·태양광(큐셀)·첨단 소재등의 사업 부문들을 두고 있는데, 이 가운데 케미칼 부문에서 고순도 크레졸 사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출처=한화솔루션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은 이미 지난해부터 헬스 케어 사업의 포석을 깔아 왔다. 해당 사업부는 기저귀와 생리대 등 위생 용품들에 사용되는 '퍼스널 케어' 원료인 C5 수첨 석유 수지를 자체적으로 개발해 지난 2019년 4분기부터 생산해 왔으며, 지난 5월에는 고굴절 렌즈와 식품용 라미네이팅 접착제 등의 원료인 자이릴렌디이소시아네이트(XDI)를 양산하며 '비전 케어' 사업에도 진출했다.
케미칼 부문은 현재까지 자체적으로 개발한 C5 수첨 석유 수지·XDI·고순도 크레졸 등 3개 소재를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해, 헬스 케어 분야 전반을 아우르는 중장기 사업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다. 미래 성장성이 기대되는 의료용 장갑과 의약품 포장재, 인공 관절 등 일반 의료 장비들에 들어가는 소재도 개발해, 헬스 케어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설명이다.
이는 케미칼 부문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석유 화학 위주에서 헬스 케어 및 정밀 화학으로 다각화해 혁신하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화솔루션은) 케미칼 부문에서도 고부가 신제품을 연이어 출시하며 사업 포트폴리오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한화솔루션이) 추진해 온 고부가 소재 분야 연구 개발(R&D)이 속속 결실을 맺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한화솔루션은) 글로벌 헬스 케어 시장에서 오는 2030년까지 1조원 이상의 매출액을 달성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미 화학 업계의 '트렌드'
이미 글로벌 화학 기업들은 헬스 케어 소재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 사업 확장을 꾀하는 추세다. 각종 의료 장비들의 소재가 화학 원료로 생산되는 데다, 특히 뉴트리션 사업의 경우 화합물 합성·분리·정제·배합 과정을 두루 거치므로 화학 분야 기술력 확보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독일 바스프는 식품과 사료를 포함한 '뉴트리션·케어' 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고, 미국 다우듀폰도 전체 매출에서 뉴트리션 사업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일본 미쓰이케미칼은 의약용 화학 소재와 치의료 용품 등을 중심으로 2015년부터 독립적인 헬스 케어 사업부를 운영 중이다.
한화솔루션의 고순도 (XDI)로 만든 고굴절 렌즈. 출처=한화솔루션
한편 미쓰이케미칼 경우 작년까지만 해도 XDI 독점 생산 업체였으나, 한화솔루션이 XDI를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그 아성을 깨뜨린 바 있다. 다만 국산화를 국내 시장 확대로 연결하는 것은 아직 과제로 남았다는 평가다.
한화솔루션이 한화케미칼이었던 시절인 2016년 국내 XDI 수입량은 10톤 안팎에 불과해, 사업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회사가 추산한 잠재 수요인 약 600톤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XDI를 공급 받고 싶어 하는 (국내) 안경 제조사들이 꽤 있었다"고 설명했으나, 주 고객사로 예상되는 중소기업들이 XDI를 활용하는 데에 난관을 겪을 것이라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온다. 시행착오를 감수하며 새로운 소재를 테스트하고 제품 개발에 나설 중소기업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신소재가 개발돼도 이를 접목한 제품을 양산하기까지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투자 부담으로 상용화가 지연되는 경우가 꽤 있다.
어쨌든 한화솔루션은 현재 연산 1200톤 규모의 XDI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양산에 돌입한 지 약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으며, '풀 가동'은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정상 가동 기준으로 기대되는 수익은 연 매출 200억원 수준이다.
고령화 시대의 욕망을 읽다
화학사들이 헬스 케어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헬스 케어는 고부가 제품 위주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석유 화학 사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는 국내 화학 업체들이 중국발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행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범용 제품으로는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 업체들을 당해 내기 어렵지만, 기술력 등의 면에서 진입 장벽이 높은 고부가 제품 시장에서는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업계의 답은 간단하다.
역사상 가장 늙고 풍족한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건강과 연명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며 이는 헬스 케어에 대한 수요로 명징히 가시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는 국내 XDI 생태계 구축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도 한화솔루션이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유기도 하다. 헬스 케어의 수익성이 당장 증대되기는 힘들 수 있으나, 노령화 사회의 본격화에 따라 장기적인 성장 모멘텀은 확실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헬스 케어 사업은 지속 가능 경영으로도 연결된다는 게 한화솔루션 측의 설명이다. 사람들의 건강과 수명 연장에 기여해 지속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것이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헬스 케어 사업은 생활 수준 향상과 고령화 추세에 따라 가파르게 성장할 전망"이라면서 "(한화솔루션은) 자체 (헬스 케어 소재) R&D 역량을 강화해 글로벌 고부가 헬스 케어 원료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한화솔루션은 2019년 200억원 규모였던 헬스 케어 및 정밀 화학 사업 매출을 2030년까지 1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한화솔루션이 수소와 태양광을 날개로 달았다면, 헬스 케어는 머리로 삼은 모양새다. 독수리는 날개로 도약하지만, 천 리를 내다보는 머리는 진로 방향에 두고 있다. 한화솔루션이 높이, 그리고 더 멀리 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