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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A형 간염 주범' 조개젓, 버젓이 팔린다…상인들 "억울하다"

입력: 2019- 09- 18- 오후 05:29
© Reuters.

16일 오후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젓갈상가 매대에서 조개젓이 사라졌다. 대신 새우젓이 판매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조준혁 인턴기자

"A형 간염 증가 주원인 조개젓, 섭취 중단해야"

지난 11일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의 공식 발표 내용이다. 올해 'A형 간염' 증가 원인을 심층 조사한 결과 시중 유통되는 조개젓이 '주범'이라는 발표였다.

근거는 이렇다.

올해 A형 간염 환자(9월 6일 기준)가 1만421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818명) 대비 약 8배 폭증했다. 확인된 A형 간염 집단 발생 26건을 역학 조사한 결과 21건(80.7%)에서 조개젓 섭취라는 공통 분모가 확인됐다. 지역별로는 충청권 환자 발생률이 높았다. 인구 10만명당 환자 발생건수는 대전이 많았다.

질본은 조개젓 안정성이 확보될 때까지 먹지 말라는, 섭취 중단 권고까지 내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A형 간염 바이러스 유전자가 검출된 조개젓갈 4건의 판매·유통을 금지시켰다. 일부 상품은 회수한 뒤 전량 폐기했다. 이달 중 조개젓 유통제품 전수도 조사할 방침이다.

식약처와 질본 등 정부 대응 이후 젓갈 소비자가 주로 찾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조개젓은 사라졌을까.

조개젓은 여전히 팔리고 있다. 한경닷컴이 13일 추석 연휴부터 연후 직후인 16일까지 A형 간염 집단 발병지인 부산 내 주요 어시장과 인천의 유명 젓갈시장, 서울시내 전통시장 및 대형 마트 등 10곳을 현장 취재한 결과 8곳에서 조개젓을 살 수 있었다. 인포그래픽 = 신은동 인턴기자

정부가 부랴부랴 조개섭취 중단 권고를 내렸지만 일선 시장엔 행정력이 미치지 못했다. 취재진이 만난 소비자 다수는 조개젓 섭취 중단 관련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정부 행정과 소비자 현실 사이에 큰 괴리가 확인됐다.

판매상인은 상인들대로 정부 발표가 섣불렀다며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모든 A형 간염 발병 원인을 조개젓에 돌렸다며 억울해했다. 그 탓에 조개젓뿐 아니라 추석 대목 김장철에 다른 젓갈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경닷컴 인턴기자 3인방이 발로 뛰며 취재한 '조개젓 르포' 현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 '집단 발병' 부산, 조개젓 여전히 판매 인포그래픽 = 신은동 인턴기자

"조개젓 지금 매대에 없는데, 구매하실거면 내어 드릴게요. A형 간염 원인이 조개젓이라 해서 아무래도 조심스럽죠.”

올 추석 연휴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멸치젓갈 전문 시장 대변항. 도매 젓갈을 전문 취급하는 이곳 상인들 신경은 곤두선 상태였다. 부산이 A형 간염 집단 발병 진원지인 탓이다. 대변항에서 17km 거리에 불과한 부산시 수영구 한 식당에서 A형 간염이 집단 발생하면서 확진자만 161명에 이른 탓이다.

정부는 조개젓을 먹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매출이 걸린 상인들은 판매를 쉽사리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 시장 두 집에 한 집 꼴로 조개젓은 팔리고 있었다. 기장 멸치로 유명한 대변항 일대에도 조개젓갈과 A형 간염의 불안감이 내려 앉았다. 사진=신은동 인턴기자

30년째 젓갈 장사를 해왔다는 조모씨는 "A형 간염 원인으로 조개젓이 지목된 후 문제가 없는 상품도 피해를 본다”며 "오징어젓, 낙지젓 등 유사품에 연쇄 타격이 갈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연일 관련 뉴스가 이어지자 조씨는 매대에서 내린 조개젓을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찾는 사람이 있으면 꺼내준다. 그는 "식약처 조사원이 들러 상품분석을 위해 다 회수해갔다"면서도 "반품처리가 된 상품을 제외한 자투리 상품을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매 유통시장도 비슷한 모양새다. 16일 부산 기장시장의 경우 젓갈집 5곳 중 3곳이 조개젓을 판매하고 있었다. 국산 조개젓만을 취급한다는 김모씨는 "(우리 젓갈은) 식약청에서 문제제기한 상품이 아니다"고 연거푸 강조했다. "오전에도 찾는 손님이 있어 꺼내 놨다"고도 했다. 수요가 꾸준해 판매를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구매를 독려하는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국내 대표 수산물시장으로 꼽히는 자갈치시장 내 건어물 취급 상인 이모씨는 "주변 매장 중에서도 조개젓갈을 오래 유통해 상품에 하자가 없다"면서 "구하기 힘들어지기 전에 미리 구비해 두라"고 했다.

이렇듯 젓갈 판매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상인이 대다수였다. A형 간염 유행이 수그러드는데다, 특정 지역 및 젓갈 문제를 전체로 일반화하면 안된다는 뜻이었다. 손님 발길이 끊긴 인천 강화군 외포항 젓갈수산시장의 모습. 평소 평일 오전에 10팀 이상의 손님들이 방문하지만 이날 오전에는 한 팀만이 방문해 김장용 새우젓을 구매했다. 사진=조준혁 인턴기자

◆ 대목에 젓갈 '한파'…질본 "중국산 문제 아니다"

"정부에서 낙인을 찍어준 덕에 올해 추석 조개젓은 아예 팔리지도 않았죠. 다른 젓갈들도 절반 수준으로 매출이 뚝 떨어졌습니다."

추석 연휴 직후인 16일 인천 강화군 외포항젓갈수산시장에서 만난 상인 정모(55)씨는 격양된 어조였다. "몇몇 업체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젓갈 업체가 보통 많나"라며 "특정 업체에서 하자가 있는 물건을 제공했을 뿐인데 괜한 피해는 시장 상인들만 입었다"고 언성을 높였다.

정부 발표 이후 젓갈 시장은 활기를 잃은 분위기다. 추석 대목과 함께 김장철 수요를 기대했던 상인들은 때아닌 한파를 맞이했다.

인천의 대표적 젓갈시장인 외포항젓갈수산시장도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평일 오전 평소 10팀 넘게 손님들이 방문했지만 이날은 한 팀만이 방문해 김장용 새우젓을 구매했다.

정씨와 같은 시장에서 30여년 동안 장사를 해왔다는 한모(73)씨는 "우리가 구체적인 집계를 낼 수는 없지만 체감을 하지 않는가"라며 "조개젓은 이제 아무도 찾지 않고 젓갈 매출도 전반적으로 줄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시장에 젓갈을 유통하는 유통업자 김모(63)씨는 "시장에서 싸구려 제품들이 걸러져야 하는데 식당 장사하는 사람들이 신경을 안 쓴 결과가 지금 상황을 초래한 것"이라며 "결국 꼼꼼하게 물건을 가려서 받는 시장 상인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인천 내 다른 유명 젓갈전문시장인 소래포구도 때아닌 한파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김장철을 앞두고 가장 활기를 띄어야 하는 소래포구 젓갈어시장과 젓갈상가엔 손님들 대신 늦더위에 살아남은 파리들만 가득했다. 젓갈상가 판매동에서는 아예 조개젓을 치우고 새우젓으로 매대를 채웠다.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젓갈상가에서 3년째 장사를 이어오고 있는 설모(50)씨는 "작년하고 대비했을때 완벽히 망했다"며 "김장철 앞두고 젓갈 시장은 대목인데 정부의 이번 발표는 마치 젓갈 전체가 위험한 것처럼 홍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오후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젓갈상가 매대에서 조개젓이 사라졌다. 대신 새우젓이 판매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조준혁 인턴기자

중국산 조개젓이 A형 간염 발병의 원인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조개젓뿐만이 아니라 젓갈 시장 자체가 구조적으로 중국산 비중이 높은 가운데 이 부분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10여년간 소래포구 젓갈어시장에서 장사를 해온 이모(47·여)씨는 "어디서는 중국산이 문제라고 보도를 하는데, 구조적으로 중국산이 젓갈 시장 물량의 90% 가까이 차지하는 것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며 "중국산이 많을 뿐인데 마치 중국산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젓갈 시장을 죽이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우리는 중국산이 원인이라고 보도자료 내지 않았다"며 "일부 언론에서 그런식으로 나갔다"고 해명했다. 이어 "중국산과 국산의 비율이 아마 9대1, 8대2 그렇다"며 "중국산이 A형 간염 발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6일 서울 양천구 이마트 목동점의 젓갈 코너. 어리굴젓 창난젓, 오징어젓, 명란젓 등 다양한 젓갈들이 진열되어 있다. 사진=이미경 인턴기자

◆ 모르는 시민 태반…어패류 전반 불신 우려

16일 월요일 서울 양천구의 이마트 목동점. 개점 시간인 오전 10시 찾아갔다. 공산품과 과자 코너를 지나 입구에서 가장 먼 쪽에 있는 젓갈 코너로 향했다. 어리굴젓 창난젓, 오징어젓, 명란젓 등 다양한 젓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종류는 다양했지만 색은 전반적으로 붉은색으로 양념이 되어 있었다.

조갯살을 소금에 절여 삭힌 조개젓을 구매할 수 있냐고 점원에게 문의했다. "당분간은 마트에서 구매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점원은 "언제까지 구매할 수 없을지 알 수는 없지만 이왕이면 안전하다고 결과가 나온 뒤에 먹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점원과 기자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한 50대 여성은 "그런 일이 있었느냐. 그래서 조개젓을 안 파느냐"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정부의 '조개젓 섭취 중단 권고' 자체를 모르는 소비자는 마트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하모(63)씨는 "김치에 넣는 새우젓과 멸치젓 외에는 젓갈류를 많이 먹지 않아 애초에 잘 몰랐다"며 어리둥절해 했다. 정부의 조개젓 발표 내용을 설명해주니 "대형마트에서 조개젓을 판매하지 않는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개젓을 포함한 다른 종류의 젓갈도 당분간 먹지 않겠다는 소비자도 만났다. 박모(53)씨는 "오징어젓이나 창난젓은 잘 먹었는데 이번 사태를 보며 다른 젓갈이라고 뭐가 다를까 싶다"고 했다. "가리비도 먹지 말아야겠다"는 반응도 보였다.

젓갈 양념 문제라기 보단 여름철 조개 자체의 문제라는 인식이었다. 실제 질본도 조개류가 A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확인한 바 있다. 먹을 경우 반드시 익혀야 한다.

조개젓뿐 아니라 어패류 전반에 대한 소비 불신이 번질 수 있음이 느껴졌다. 중국산 수입 어패류가 마트에 즐비한 상황에서 포획과 손질, 유통 과정을 알지 못하니 불안할 수 밖에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정부 발표를 보고 조개젓을 버렸다는 소비자도 있었다. 한모(35) 씨는 "기사를 보고 확인해 보니 (구매 제품은) 중국산이었다"고 기억했다.

다른 마트 한곳도 상황도 비슷했다. 이마트 목동점에서 약 5km 떨어진 서울 등촌동 홈플러스 강서점.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오후 1시 반찬 코너엔 다양한 젓갈이 팔리고 있었다. 다만 조개젓은 찾을 수 없었다. 점원은 "조개젓을 사러 온 손님에게 팔지 못하니 아쉽다"면서도 "젓갈 매출엔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는 달리 서울 중구 광장시장, 중부시장에선 조개젓을 판매했다. 서울은 집단 발병 등 직접 피해가 없었던 터라 조개젓 구매는 여전히 손쉬웠다. 상인들을 A형 간염 문제에 크게 괘념치 않는 모습이었다.

"조개젓 논란이 판매 감소와 연관되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꾸준한 판매가 이뤄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게 젓갈 상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조개젓 섭취 중단 권고까지 내린 정부의 위기감은 실소비 현장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김민성, 이미경 · 신은동 · 조준혁 한경닷컴 인턴기자 m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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