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지완 백진규 기자 = 원화의 글로벌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달러 초강세 국면이라지만, 유독 원화만 두드러지게 약세여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연초 이후 달러대비 원화 가치는 전세계에서 3번째로 낙폭이 컸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한국 원화의 약세 원인으로 △미중 무역분쟁 최대 피해국 △자유로운 외화입출금 환경 △위안화 크로스헤지 수단인 원화 △북한과 교착관계 심화 △달러/원 수급밸런스 붕괴 등을 제시했다.
10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페소 -14.9%, 터키 리라 –9.5%, 원화 –5.8% 순이다. 3월말 이후도 터키 리라 -9.0%, 원화 –3.9%, 아르헨티나 페소 –3.7% 순으로 원화는 글로벌 전체에 가장 약한 통화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장기 추세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7년말 이후 원화는 10.2%가 빠져 아르헨티나 페소(-57.9%), 터키 리라(-36.3%), 브라질 헤알(-15.5%), 러시아 루블(-10.7%) 이어 5위를 기록했다.
다만 통화가치가 급락한 국가들의 경우 하이퍼인플레이션, 미국제재, 정정불안, 금융위기 등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확연히 다르다.
서울 한국은행 강남본부에서 관계자들이 시중은행에 공급할 자금을 방출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이는 미중 무역협상 결렬에 한국이 최대 '피해국'이라는 위기 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영하 교보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4월 달러/원 환율 급등은 대외적 이슈와 배당금과 국내지표 부진 등 대내적인 이슈가 맞물리면서 오버슈팅된 면이 있다"면서 "수출 및 대중 수출이 어느 정도 회복국면에 있었는데, 무역협상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2분기 지표 반등이 불명확해졌다. 이에 원화약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유미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경제로 대외 변수에 민감도가 굉장히 높다"며 "우리나라 경제에 수출이 중요한데, 미중무역분쟁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이 증폭됐다"고 진단했다.
허정인 NH선물 연구원은 "미중 무역협상 결렬 즉 중국산 수입품 고관세 부과로 인해 가장 타격을 크게 입는 국가가 한국"이라면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이 그걸 조립해 미국에 팔기 때문에, 한국의 펀더멘털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같이 반영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 외환딜러는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되면 중국 경제성장률이 1%p 하락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며 "우린 지금 성장률 전망치 0.1%p 빠진 걸로 죽네 사네 하는데, 대중국 수출 비중을 감안하면 한국에 타격이 상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외환팀장은 "1분기 GDP가 좋지 않게 나온 상황에서, 미중 무역분쟁에 타격이 심한 국가 중에 하나라는 인식 때문"이라며 "여기에 북한과의 교착상태 등으로 달러/원 환율 움직임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 투기세력 놀이터? 전세계 'ATM' 전락...'수급' 메커니즘 붕괴
외화반출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선 외화입출금이 자유롭다는 점도 환율 변동성을 키웠다.
허정인 연구원은 "원화는 전세계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불린다"며 "역외를 포함해 24시간 거래가 가능하고 중견 국가 지위로 소버린 리스크가 적어 안정적이고 유동성이 풍부하다. 따라서 달러가 강세를 나타낼 때 달러/원 환율의 롱(매수) 베팅이 많이 유입된다"고 설명했다.
김유미 이코노미스트도 "자금유출입이 좀 더 자유로운 우리나라 '환'이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외환시장 개방성을 원화약세 원인으로 지목했다.
국제외환시장에서 위안화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는 점도 원화약세 압력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하준우 대구은행 외환딜러는 "원화는 아시아 통화에서 유동성이 좋고, 중국 위안화와 크로스 헤지(Cross hedge) 할 수있는 통화가 많지 않은데 그중 하나가 원화"라면서 "위안화 약세 전망이 나오면 원화는 더 많이 빠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크로스 헤지는 현물시장 금융상품은 많은데 선물시장의 거래상품이 제한돼 있는 경우, 현물과 다른 선물에 투자해 헤지하는 것을 말한다.
일각에선 외환시장 밸런스가 완전히 붕괴됐다며 격양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미 성장격차 확대 때문에 환율이 올랐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운을 뗀 뒤 "그렇다면 외국인이 4월에 주식 팔고 도망갔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주식을 샀다. 4월 기준 주식거래로 30억불이 순유입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올랐다. 그냥 환율 베팅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배당 역송금도 솔직히 아니라고 본다"면서 "배당 역송금이 끝나는 시점에 초단기스왑(Swap)이 망가지면서 시장에 신호를 준다. 문제는 그 신호가 나온 뒤, 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결국 수급 메커니즘이 망가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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