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에너지 효율이 낮은 산업용 기기를 아예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인 기기와 건물 등에 대한 인센티브는 확대한다. 이성인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8일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최한 ‘에너지 소비구조 혁신’ 토론회에서 이런 내용의 ‘국가 에너지효율 혁신전략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이 연구위원은 산업부가 올 상반기 안에 발표할 국가 에너지효율 혁신전략의 연구용역을 맡고 있다. 그는 “에너지 효율 제고는 그 자체로 가장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 자원”이라며 “그동안 우리나라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일례로 한국의 ‘에너지 원단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33위에 그친다. 에너지 원단위는 에너지 이용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 연구위원은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해 가전제품 사무기기에 주로 적용되는 ‘최저효율 기준’을 산업용 기기와 건축 기자재까지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최저효율 기준은 에너지 효율의 하한선을 제시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제품은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냉장고, 세탁기, TV 등 30종에 도입됐다. 미국(52개), 중국(41개)에 비해선 적다. 이와 관련 산업부 관계자는 “공업용 환풍기와 대형 펌프 등 산업용 기기에 최저효율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유도하는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연구위원은 “슈퍼 프리미엄 전동기 등 고효율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을 늘리고 에너지절약 시설투자·융자지원 등 예산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절약 시설투자·융자지원 예산은 2008년 9100억원에서 2017년 6300억원으로 뒷걸음쳤다. 이 연구위원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 등 4차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활용해 에너지 소비를 효율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조기선 전기연구원 전력정책연구센터장은 ‘한국형 톱러너(Top-Runner) 이니셔티브’ 도입을 권고했다. 독일에서 2016년 도입한 톱러너 이니셔티브는 에너지 효율이 뛰어난 가전제품에 시장 선도제품이란 뜻으로 톱러너 인증을 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사업이다. 조 센터장은 “냉방기나 TV, 냉장고 등에 우선 적용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표적인 저효율 조명인 형광등을 2028년까지 완전 퇴출하고 공공기관에 스마트조명시스템 도입 의무를 지우는 방안 등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부는 이런 제안들을 적극 검토해 오는 3월께 국가 에너지효율 혁신전략을 발표할 계획이다. 에너지효율 향상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임은 맞지만 수요 관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한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전문가들과 함께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권고안을 지난해 11월 내놓았는데 여기서 2040년 에너지 소비를 2017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당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뒷받침하려고 에너지 절약을 강요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