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3년차 신참 사무관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업무 내용에 많은 제한이 있었다. 실무담당자로서 정책결정 과정에 극히 일부만 참여했지만 마치 주요 정책의 전체 의사결정 과정을 아는 것처럼 주장해 문제의 본질을 크게 왜곡시키고 국민을 호도했다.”
기재부는 지난 2일 저녁 신 전 사무관의 기자회견 내용을 반박하며 이 같은 해명 자료를 냈다. 기자회견 때만 해도 웃는 표정으로 향후 계획을 밝히던 신 전 사무관은 다음날 아침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다.
정치권과 친정부 성향 네티즌들의 원색적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그였다. “먹고살려고 나와 술자리 방담감도 안 되는 얘기(를 했다)”(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탈자, 비위행위자의 일말의 가치도 없는 억지 주장”(어기구 민주당 의원), “신 전 사무관이 학원 강사로서 노이즈마케팅 한번 한 것”(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등의 매도도 그의 추가 폭로를 막지는 못했다. “단기간에 큰돈 벌기 위해 사기행각을 벌인 가증스러운 자”(손혜원 민주당 의원) 등 인격 모독도 참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 ‘치명타’를 입힌 건 ‘친정’인 기재부의 반박 내용이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공복(公僕)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함께 가족처럼 일했던 전 직장 선배들이 ‘뭘 잘 몰랐던 치기 어린 사무관’으로 자신을 매도한 데 큰 모욕감과 배신감을 느꼈다는 얘기다.
경제부처 한 사무관은 “신 전 사무관은 폭로 기자회견에서도 기재부에 애정을 드러냈는데, 아무리 조직이 우선이고 윗선에서 강경 대응을 지시했더라도 ‘꼬리 자르기’식으로 사무관 개인 문제로 몰아간 건 이해할 수 없다”며 씁쓸해했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대한민국 정책은 5급 사무관 손끝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고, 사무관들은 실제로 그런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며 “기재부 해명을 보고 중앙부처 젊은 공무원들이 느끼는 자괴감이 크다”고 했다.
정부와 연이 있는 일부 ‘전문가’의 비난도 그에게 상처였다. 대통령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인 조영철 고려대 초빙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초과세수가 발생하면 반드시 국채를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경험 없는 사무관이 깊은 내용을 알기 힘들다”고 썼다. 신 전 사무관은 유서에서까지 “금리 인상기라 모두 바이백이나 적자국채 발행 축소를 기대하고 있었고, 발행하면 시장 기대(를) 역행하는 거였어요, 교수님”이라고 쓰며 조 교수 의견을 반박했다.
경제부처 한 서기관은 “신 전 사무관의 행동에 다소 문제가 있었더라도 핵심은 그가 폭로를 통해 공무원 사회의 잘못된 의사결정 구조 문제를 들춰내려고 한 것”이라며 “본질은 가려지고 개인 문제로 몰아간 것이 그로 하여금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게 한 것 같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때 펴낸 공약집에서 “내부고발자 등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정부와 여권은 공무원이라는 자부심까지 포기해가며 용기를 낸 젊은 사무관의 인격을 합심해 짓밟았다.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공익’이 과연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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