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정작 국내 태양광 제조업체들은 도산을 걱정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태양광 부품업계 선두주자인 JSPV의 이정현 회장은 21일 “정부 정책 수혜를 다른 나라 기업이 따먹고 있는데 정부는 국산 기술 보호는커녕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충남 아산에서 올라온 이 회장은 태양광업계의 현실을 전달해달라며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자청했다.
이 회장은 최근 아산의 한 지역민이 JSPV의 태양광 제조공장을 찾아온 일화부터 소개했다. 가정용 태양광에 설치한 중국산 설비가 고장 났는데 설치업자가 연락두절이어서 도움을 받으려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발전 설비를 정밀 조사해 보니 모듈당 72장인 셀 가운데 상당수가 불량이었다. 이 회장은 “태양광 설비의 품질 차이는 설치 후 3~5년 지나야 발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며 “주택용 태양광 시장이 인증도 제대로 받지 않은 저가형 중국산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건 큰 문제”라고 했다.
태양광 설비는 외부 환경에서 20년 이상 일정한 효율을 유지하는 게 관건인데, 정부가 인증서 발급 등 품질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가정용 태양광 설치업자들은 값싼 중국산 B·C급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에 추후 설치업자와 소비자 간 분쟁도 급증할 것이란 게 그의 예상이다.
이 회장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경동솔라 미리넷 심포니 경원 웅진솔라 등 쟁쟁하던 국내 제조사 30여 곳이 문을 닫았다”며 “2030년까지 수십조원을 투입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확대한다는 정책의 수혜를 엉뚱하게 중국 업체들이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태양광 사업자들이 떼돈을 벌고 산림을 훼손하고 있다는데 정작 오랫동안 기술개발에 몰두해온 국내 제조사들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했다.
국내 태양광 발전업계의 고용인력도 감소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8698명이던 태양광업계 고용인력은 2016년 8112명, 작년 7522명 등으로 계속 줄고 있다.
저가형 중국산 설비를 판매한 뒤 사후관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피소되거나, 아예 잠적하는 설치업자도 적지 않다. 이 회장은 “눈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각 모듈의 품질을 일반 소비자들이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정부에서 KS인증 등을 통해 깐깐하게 검증하고, 제품 불량이 발생할 경우 설치업자뿐만 아니라 수입업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제조사들은 모든 제품을 A급으로만 제조하고 있고 불량률도 평균 0.1% 이내”라며 “중국산 불량률이 3%대로 알려져 있는데, 불량 처리된 모듈을 국내 업체들처럼 전부 폐기 처분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불량 제품이 유통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공정 경쟁’ 환경만 조성된다면 국산 태양광이 충분히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태양광 모듈의 열 효율을 극대화했고 가격도 충분히 낮췄다”며 “다만 지금과 같은 불공정 환경이 지속되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기업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전망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제 7~8곳 남은 국내 태양광 제조사의 추가 도산 및 해외 이전이다.
이 회장은 “제조업체가 무너지면 고용 창출도 다 물건너가는 것 아니냐”며 “추석 등 명절 때마다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발표가 쏟아지지만 실제로 돈이 필요한 업체들은 은행에서 1원도 빌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정부가 현장을 자주 방문해 요즘 제조업체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제대로 파악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 임원을 겸하고 있는 이 회장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태양광 발전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원자력 발전 역시 장점이 있다”며 “국가 에너지는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적절하게 배분돼야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게 간과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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