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너퍼킨스(KPCB)는 미국 최대 벤처캐피털(VC) 중 하나다. 아마존, 구글을 포함해 850여 개 기업의 성장을 지원했다. KPCB가 이번에는 국내 간편송금 앱(응용프로그램) ‘토스’에 베팅했다. KTB네트워크와 함께 500억원을 투자했다. 1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토스가 간편송금을 넘어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투자로 국내 핀테크(금융기술)업계 최초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토스(회사명 비바리퍼블리카)는 투자받은 돈으로 증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2015년 ‘칠전팔기’ 끝에 토스를 출시한 치과의사 출신 이승건 대표는 ‘금융의 네이버’를 꿈꾸고 있다. 토스를 통해 모든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다. 증권업 진출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첫 승부수가 될 것이란 평가다.
“토스는 10대들의 첫 금융 경험”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이 대표는 ‘치과의사보다 좀 더 사회에 기여할 길이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2011년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실패의 연속이었다. 소셜미디어, 휴대폰 투표 앱, 강의 포털 등이 모두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이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3개월 동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보고자 했다. 100여 개의 사업 아이디어가 나왔다. 토스는 사업 아이템으로 이어진 8개의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공인인증서 등 복잡한 인증절차 없이 상대방 전화번호만 입력하면 계좌이체를 할 수 있는 토스는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10~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토스하자’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였다. ‘진짜 송금이 될까’ 반신반의하며 토스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지난달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성장세는 매출로 연결되고 있다. 2016년 34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205억원으로 6배 늘었다. 올해 매출은 6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들이 평가한 기업가치도 올들어 6개월 만에 8000억원에서 1조3300억원으로 급증했다.
처음 이 회사에 주목한 건 벤처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김한 알토스벤처스 대표였다. 거듭된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 대표의 끈기를 높이 샀다. 무엇보다 금융업의 패러다임을 바꿔 소비자가 편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이 대표의 비전에 동의했다. 알토스는 2014년부터 이 회사에 투자해 토스의 탄생과 성장을 지원했다. VC업계 관계자는 “미래의 고객인 10대들은 토스를 통해 첫 금융 경험을 하고 있다”며 “이 회사가 가진 가장 강력한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카카오페이와 핀테크 주도권 경쟁
토스에 간편송금은 일종의 ‘미끼 상품’이다. 간편송금 거래액이 늘어날수록 회사는 손해를 본다. 은행 전산시스템을 통신회선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계좌이체를 하기 때문에 건당 약 200원의 수수료를 은행에 지급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간편송금으로 가입자를 확보한 뒤 다양한 금융상품을 판매해 금융회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게 토스가 추구하는 수익모델이기 때문이다. 무료 카카오톡 메신저로 사용자를 확보한 뒤 다양한 부가서비스로 돈을 버는 카카오와 같은 맥락이다.
토스는 이미 다양한 금융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공인인증서를 등록하면 19개 은행, 3개 증권사의 계좌를 한눈에 조회할 수 있는 ‘통합계좌 조회’가 출발점이었다. 이후 무료로 신용등급을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 소액으로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개인 간 거래(P2P) 서비스, 1000원만 있으면 투자할 수 있는 펀드 등을 차례로 내놨다. 지난 4월엔 환전 없이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의 유망 20개 주식 종목에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는 ‘해외주식투자 서비스’를 출시했다.
증권사 설립은 명실상부한 종합 금융플랫폼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승부수다. 토스는 증권사를 통해 소액투자 상품을 내놔 10~30대 젊은 층을 더 끌어들인다는 전략이다. 주당 가격이 높은 종목은 쪼개서 살 수 있는 해외주식 투자 상품, 해외 상장지수펀드(ETF)를 터치 몇 번만으로 매매할 수 있는 서비스도 내놓을 방침이다.
토스의 증권업 진출은 바로투자증권을 인수한 카카오페이에 맞불을 놓는다는 의미도 있다. 카카오페이는 토스보다 한발 늦게 간편송금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카카오톡’이란 강력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빠르게 이용자를 늘리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핀테크 맹주 자리를 놓고 카카오와 토스가 경쟁하는 구도가 됐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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