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정부가 외국인을 대기업집단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발표를 미루기로 했다. 부처 간 이견으로 인해 재검토가 필요해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배 가능성 등 통상 마찰 우려가 제기되는 점이 문제로 파악된다.
3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다음 주 초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기획재정부와 개정안 내용 및 향후 추진 일정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이번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외국인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대기업집단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동일인 정의·요건 규정을 담을 계획이었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총수) 또는 법인으로, 대기업집단 규제를 적용받는 기업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이 된다.
지난해부터 대기업집단에 진입한 쿠팡의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국내 쿠팡 (NYSE:CPNG) 계열회사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명백한데도 총수 지정을 피하고 있는 것을 두고 특혜 논란이 일자 연구 용역을 거쳐 제도 개선안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산업부와 기재부 등 관계부처에서 반대의견이 제시된 것으로 파악된다. 산업부는 공정위가 마련한 시행령 개정안이 한미 FTA 최혜국 대우 규정에 어긋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의 김범석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자회사가 최대 주주인 에쓰오일의 총수는 지정하지 않는다면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배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 자본 국내 투자 유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거론됐다. 기재부도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할 때 공정위가 시행령 개정을 서두르기보다는 산업부·외교부 등과 사전 협의를 마친 후 입법 예고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당초 시행령 개정안을 이번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없던 일로 됐다"며 "발표 시점은 물론 방향도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이번 시행령 개정 연기를 두고 사실상 '수장 공백' 상태에 있는 공정위가 부처 간 협의 사안에서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새 정부 출범 전 사의를 표명했지만, 후임이 석 달째 임명되지 않고 있다. 국무회의에는 윤수현 부위원장이 대신 참석 중이다.
강진규/김소현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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