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경제 지표 하나에 이렇게 많은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린 적이 있었는가 싶다. 이는 그 결과에 따라 시장이 흘러가는 경로가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분수령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결과는 거의 모두의 예상 수준을 뛰어 넘는 서프라이즈였다. 전월 대비 1.3%, 전년대비 9.1%나 상승해 사전 전망값들의 최고치도 무색하게 만들었을 정도다. 단연 에너지 물가 급등이 돋보였다. 가솔린 가격은 11.2%나 상승했다.
9.1%라는 숫자에도 놀랐지만 생각보다 물가상승세가 견조하다는 점에서 놀랐다. 에너지 부문만 잡으면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에너지부문, 즉 수요측 물가도 상승폭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 인상 효과도 부분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Fed의 역할론이 다시금 부각되는 계기가 됐는데, 7월 FOMC의 75bp 인상 확률은 92%에서 22%로 떨어지고, 100bp 인상 확률이 7%에서 78%까지 상승했다. 처음보는 원빅 전망이다.
시장 반응은 2가지 상이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채권시장을 보면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단기금리는 오르고, 장기금리는 빠졌다. 그 동안 기준금리 인상을 충분히 반영시켜 왔다고 생각했지만 100bp 인상 의견이 부상할 정도로 인플레이션 통제가 시급해 졌다고 본 것이다. 반면 금리 인상을 통한 수요 위축이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장기금리에 녹여져 있다.
주식시장은 하락 마감하긴 했지만 CPI발표 당시의 하락분은 상당 부분 되돌렸다. 바이든 대통령이 ‘구닥다리 통계’라는 거친 표현을 사용하면서 물가 잡기 의지를 보인데다, 6월 중순 이후 20% 하락한 유가와 각종 곡물, 원자재 가격이 물가 피크론을 뒷받침한다고 보는 것이다. 궤적은 피크아웃이지만 절대적으로는 높은 인플레 환경이 지속될 것이라 본다. 최대 변수는 바이든의 사우디 방문 성과다. 유가가 100달러 내외에 머문다면 인플레 가속화는 제한된다.
하반기 유가보다 걱정되는 부분은 주거비 인플레이션이다. 주거비는 유가에 비해 변동성은 적지만 물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다. 6월 물가상승률에 대한 주거비 기여도는 3.2%p로 CPI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주거비는 적어도 올해 3분기까지는 지속적인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거비와 서비스 가격은 연준이 통화정책을 통제하고자 하는 중요 요소이다. 6월 CPI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연준의 통화정책이 두 품목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강한 강도와 시간이 필요하다.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시장은 Fed의 긴축 강도가 완화될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주거비와 서비스 가격이 제대로 잡히는 모습을 보일 때까지 Fed가 물러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원자재 가격 하락이나 향후 소매업체들의 재고 할인 가능성을 감안하면 단기적이라도 6월을 고점으로 물가 압력이 완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번 물가 서프라이즈는 연준의 유일한 옵션인 내수 둔화가 강하고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정점 통과 가능성이 무색하게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가계 구매력과 소비심리가 계속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통화 긴축 영향이 더해지면서 내수 경기 둔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오랫동안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거의 완전고용 상태 경기둔화라 학자들도 이걸 과연 침체로 봐야할지 논란이 분분하다. 지난 주 월스트리트저널은 ‘ 미국은 2차 세계개전 이후 총 12번의 침체를 경험했는데, 매번 원인과 특징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고용 감축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고용시장이 유례없이 강해 어리둥절하다’고 지적했다. 경기둔화시 선행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파트타임 고용도 급감했다. 베이비부머세대 은퇴가 시작되면서 구인난이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고용시장이 너무 강하다보니 연준이 마음놓고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고용지표 발표 후 7월 연방기금 금리 선물 시장에 100bp 인상 확률이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면 경기침체가 온다 하더라도 과거보다 매우 ‘얕은 수준의 침체’일 가능성도 있다. 이는 향후 연준의 긴축 압력이 완화되면 생각보다 빠른 복원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를 기대해볼 수 있는 근거들이 발견되고 있지만, 물가지표에서 확인되는 데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시장의 기대보다 지표의 변화가 늦을 수 있어 경계심은 지속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