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KS:005930) 부회장의 사면을 정부에 공식 건의하겠다고 14일 밝혔다. 세계 반도체 패권 경쟁이 벌어졌는데 이 부회장이 아무런 역할을 못 하는 상황이 계속돼선 안 된다는 게 이유다. 경제계 주요 인사 가운데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은 손 회장이 처음이다.
손 회장은 이날 서울 남대문로 CJ 사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지금은 한국 경제를 위해 이 부회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며 “(이 부회장이) 최대한 빨리 경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각국이 반도체산업을 키우겠다고 나서고 있어 한국이 언제 ‘반도체 강국’ 자리를 뺏길지 모르는 게 현실”이라며 “삼성전자가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면 이 부회장이 하루빨리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돼 있다. 사면이나 가석방 등을 통해 풀려나지 않는다면 이 부회장은 형기가 끝나는 내년 7월 말까지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손 회장은 “삼성전자에서 글로벌 기업인들과 교류하고 과감한 투자를 결단할 수 있는 인물은 이 부회장”이라며 “세계 반도체 전쟁이 시작됐는데 1년을 느긋하게 기다릴 순 없다”고 지적했다. 사면 시기와 관련해선 늦어도 광복절에는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 회장은 상법, 중대재해처벌법, 노동조합법 등 지난해 경제계의 반대에도 국회에서 강행 처리된 법안에 대해 “기업에 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한다”며 보완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노조법에 대해서는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정부가 노사관계 문제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회장은 최근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촉발된 대기업의 도미노 임금 인상에 대해 “대·중소기업 간, 산업 간 임금 양극화가 걱정스럽다”며 “여기에 최저임금까지 과도하게 오르면 여력이 없는 기업들은 버티기 힘든 만큼 자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 기업에 4중 제재…보완입법 서둘러 과잉처벌 막아야"
손경식 회장, 기업규제 쏟아내는 정부·정치권에 '하소연'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발언에 조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거친 표현을 자제하고, 정부는 물론 노동계와 정치권 등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일도 거의 없다. 하지만 14일 서울 남대문로 CJ 사옥에서 만난 손 회장은 거침이 없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측근은 “우리 경제가 도약할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감에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가 지표상으론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수는 여전히 부진하고,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은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합니다.”
▷방법은 무엇입니까.
“기업이 창의성과 자율성을 발휘할 환경을 만들어주고,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줘야 합니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게 가장 큰 숙제입니다.”
▷상속세가 논란입니다.
“최대 65%에 달하는 상속세율은 기업인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줍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가 기업인들의 의욕을 꺾는 문제도 생깁니다. 세율을 합리적으로 낮춰야 합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은 규제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과감하게 풀어야 합니다. 기업이 공장을 새로 세워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해도 규제에 막히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기존 규제를 없애지는 못할망정 자꾸 새로운 규제가 생겨 걱정입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각종 법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손 회장은 당시 상법, 공정거래법, 노동조합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지만 끝내 법안처리를 막지 못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끝내 통과됐습니다.
“영국에선 이와 비슷한 법이 제정되는 데 13년이 걸렸습니다. 한국은 제대로 논의도 하지 않고 순식간에 법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시행령 등을 통해 보완해야 합니다. 나아가 법 자체를 개정해야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개정해야 합니까.
“어떤 기업은 사업장이 100곳이 넘습니다. 대표이사나 책임자가 어떻게 전부 다 챙깁니까. 사망자 한 명이 발생하면 개인 처벌, 법인 벌금, 징벌적 손해배상책임, 안전교육 수강 등 4중 제재가 부과됩니다.”
▷노조법도 작년에 처리됐습니다.
“현재 노조법은 과거 노조의 힘이 약할 때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사용자가 약자가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노동계가 원하는 방향대로 노조법이 개정됐습니다. 다시 바꿔야 합니다.”
▷어떤 조항이 추가돼야 합니까.
“사용자만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되는 조항을 바꿔야 합니다. 노조가 사용자를 공격하는 사례가 허다한데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노조가 파업할 때 사용자의 방어권도 보장돼야 합니다.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해야 합니다.”
▷기업인들은 ‘사법리스크’가 크다고 하소연합니다.
“경제 관련 법령 285개를 조사해 보니 기업인 형사처벌 항목이 2000개 이상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가 정신이 생길까요. 글로벌기업 임원들은 한국에 오는 것을 꺼린다고 합니다. 언제 범법자가 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산업을 키우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설 정도입니다. 앞으로 반도체산업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 반도체 회사를 이끄는 이 부회장의 손발은 묶여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래 반도체 주도권을 뺏길까 너무 걱정스럽습니다. 이 부회장의 형기가 끝나는 내년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조만간 정부에 사면을 공식 건의할 생각입니다.”
▷‘정치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커집니다.
“대선주자들이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표를 의식해서 정책을 만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경제에 돌아갑니다. 무작정 돈을 풀겠다는 생각을 거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손 회장은 경제계 최대 화두로 떠오른 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걱정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많은 기업에서 임금 인상 요구가 거셉니다.
“가뜩이나 기업 간 임금 격차가 큰 상황이 더 심화될까 걱정됩니다. 임금 수준이 높은 대기업들은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기업 직원들은 임금에 불만입니다.
“연공형 임금체계가 근본 원인입니다. 근속기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다 보니 불합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직무와 성과에 기반한 임금체계를 도입해야 하는데, 노조 반대로 쉽지 않습니다.”
도병욱/김일규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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