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초과 생산되는 쌀을 매입해주기로 했다. 공급이 늘어 가격이 급락하면 쌀 재배 농민들의 존립 기반이 무너져 식량 안보에 위해가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하지만 매년 쌀 재고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가 공급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을 쓰면 높은 가격이 유지돼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도 나온다.쌀 초과생산량 정부가 매입농림축산식품부는 9일 초과 생산되는 쌀을 매입할 수 있는 근거 등을 담은 '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을 행정예고 했다. 올해 1월 양곡관리법 개정에 따른 후속 조치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쌀 수요량과 생산량의 차이인 초과생산량이 전체 생산량의 3%를 초과할 경우 초과된 범위 내에서 이를 매입하기로 했다. 단경기(7~9월) 또는 수확기(10~12월) 가격이 평년 대비 5% 이상 하락하는 경우에도 초과생산량 범위 내에서 정부 매입이 이뤄진다. 공급과잉이 지속돼 민간에서 재고 누적을 호소하는 경우에는 초과생산량보다 많은 물량도 매입할 수 있다.
정부는 매년 10월15일 미곡 수급안정대책을 수립할 때 해당 연도의 신곡 예상 생산량과 예상 수요량을 추정해 초과생산량을 계산하고 이를 근거로 쌀을 매입하기로 했다. 김정주 농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예상치를 기반으로 선 매입한 후 통계청이 11월과 이듬해 1월 확정 생산량과 확정 소비량을 발표하면 추가 매입 또는 매입물량 방출을 통해 최종 매입량을 정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가격 지지방안 마련해달라", 농민 요구 수용양곡관리법 개정을 통해 정부가 쌀 초과생산량 매입 기준을 마련한 것은 올해부터 변동직불금이 폐지된 것과 관련이 깊다. 변동직불제는 수확기 쌀 가격이 국회가 정한 목표가격에 미치지 못할 경우 차액의 85%를 현금으로 보조하는 제도다. 가격에 연동된 보조금이라 세계무역기구(WTO)의 원칙과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올해 공익형 직불제가 도입되면서 폐지됐다.
농민들은 이 과정에서 가격 안정을 위한 대책을 추가로 마련해달라고 주장했고, 정부가 초과 공급을 받아주는 식으로 시장에 개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같은 결정에는 농민들의 생산 기반이 안정돼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식량 전쟁 등에 대비할 수 있다는 논리 등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생산자단체, 전문가 등 관계자 의견 수렴, 관계 부처 협의, 과거 쌀 시장 분석 등을 바탕으로 수급안정제도 운영에 필요한 세부 사항을 구체화해 양곡관리법 시행령 개정안과 고시(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 제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발표한 시행령에는 미곡 매입의 일반적 기준과 재배면적 조정 절차에 대해 정하고, 이날 발표한 고시에는 미곡 매입 및 판매의 세부 기준, 생산량과 수요량 추정 방식, 협의기구 운영 등 수급안정대책 수립에 필요한 사항을 구체화했다. 농식품부는 고시 제정안에 대한 행정예고를 이달 28일까지 진행해 의견을 수렴한 후 확정할 방침이다.쌀 남아도는데 공급량 늘리는 정책 쓰는 정부문제는 국내의 쌀 생산이 지속적으로 과잉 상태였다는 점이다. 국제연합(UN)이 정한 쌀 적정 재고량은 소비량의 약 17%로 한국의 경우 80만톤 정도다. 하지만 올해 2월 기준 재고량은 110만톤으로 이를 30만톤 초과한다. 정부와 학계가 추정한 쌀 1만톤 당 관리비용은 연간 약 31억원으로 추정된다. 과잉 공급으로 인해 정부가 이를 매입량을 늘리면 정부의 재정지출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기본적으로는 정부가 초과 공급량을 매입하는 것이 시장경제 기본인 수요 공급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르면 수요가 일정한 상황에서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지고, 이를 견디지 못하는 생산자들이 생산을 포기하면서 공급이 줄어드는 순환이 일어난다. 하지만 정부가 공급이 늘어날 때 매입을 해주는 식으로 개입하면 가격이 떨어지지 않아 공급도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어난다. 소비자 입장에선 쌀이 남아도는데 여전히 높은 가격으로 쌀을 구매해야하는 것이다. 김홍상 농촌경제연구원장은 과거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는 시그널을 주면 농민은 생산을 일단 늘리고 본다"며 "시장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생산자조직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농식품부는 가격이 오를 때 매입한 쌀을 시장에 푸는 기준도 이번에 함께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10일간 평균 가격이 3차례 이상 1% 넘게 상승하면 매입한 쌀을 방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일이 벌어졌던 것은 지금까지 2010년과 2017년 두차례밖에 없어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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